2009년 예테보리 공연에서 레이저 하프를 연주하는 장 미셸 자르Photo: Morgontupp · Wikimedia Commons · CC BY-SA 3.0
Listening guide · No. 12

장 미셸 자르, 어디서 시작할까

파리의 부엌에서 중고 오르간으로 만든 첫 앨범, 그리고 광장을 가득 채운 공연들. 다섯 장을 순서대로.

짧게 말하면

베를린이 대성당을 짓는 동안 파리에서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올 음악을 만들고 있었다. 그 음악이 곧 광장을 채웠다. 1979년 7월 콩코르드 광장에 백만 명, 1986년 휴스턴에 백오십만 명, 1997년 모스크바에 삼백오십만 명. 이런 숫자만 보면 그를 쇼맨으로 치부하기 쉽고, 독일 쪽은 실제로 그렇게 봤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은 1976년, 파리 8구 트레무아유 거리 12번지의 한 아파트 부엌에서 시작됐다. 부엌의 주인은 1969년 구체음악을 창시한 피에르 셰페르의 연구소에 들어가 음악을 배운 사람이다. 2004년까지 그의 음반과 싱글은 팔천만 장이 팔렸다. 이제 다섯 장을 순서대로 들어 보자.

에미넌트 310 유니크 오르간의 위쪽 건반과 조작부
네덜란드에서 만든 가정용 오르간 에미넌트 310 유니크. 이 오르간의 스트링 소리에 일렉트로하모닉스 스몰 스톤 페이저를 건 것이 바로 Oxygène 의 소리다. Photo: Eminent 310U Overview Upper by Dan Wilson (Hideaway Studio), CC BY 4.0, via Wikimedia Commons. Resized from the original.

먼저 알아 둘 것이 있다. 자르의 곡에는 흥얼거릴 선율이 있다. 곡은 짧고, 제목 대신 번호가 붙는다. "Oxygène Part IV", "Équinoxe 5" 하는 식이다. 악기는 베를린 쪽보다 싸고 낯설다. 에미넌트 오르간, EMS VCS 3 과 신시 AKS, ARP 2600, 코르그 미니팝스 7 리듬머신, 나중에는 페어라이트까지 썼다. 믹스는 팝 프로듀서의 방식을 따른다. 저음은 크고 고음은 밝으며, 전체가 차 안 라디오에서 잘 들리게 짜여 있다. 차이는 여기서 난다. 베를린은 그 안에 들어가 서 있는 음악을 만들었고, 자르는 틀어 놓고 달리는 음악을 만들었다.

페어라이트 CMI. 모니터 옆에 라이트펜이 꽂혀 있고, 그 앞에 건반 두 단과 타자 자판이 놓여 있다
페어라이트 CMI. 모니터와 라이트펜, 건반, 타자 자판이 한 벌이다. 사진 속 기계는 자르가 쓰던 바로 그 한 대는 아니다. Photo: Fairlight by Joho345,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Resized from the original.

자르 이야기에 자주 나오는 페어라이트가 무엇인지 먼저 짚고 가자. 페어라이트 CMI 는 1979년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서 나온 디지털 신시사이저이자 샘플러다. 그때까지 신시사이저는 회로로 소리를 새로 지어내는 기계였다. 페어라이트는 바깥 소리를 녹음해 두었다가 건반으로 음높이를 바꿔 가며 칠 수 있게 했다. 기차 소리도, 사람 목소리도, 쇠붙이 두드리는 소리도 악기가 된다. 이렇게 소리를 따서 쓰는 방식을 샘플링이라고 한다. 자르는 이 샘플러를 가장 먼저 쓴 음악가 가운데 한 사람이었고, 1981년 Les Chants Magnétiques 부터 그의 음악에 이 소리가 들어온다.

다섯 장, 이 순서로

1Oxygène cover

Oxygène

1976 · 디스크 모터스 · 여섯 부분 · 39분 39초

부엌에서 태어난 음반. 1976년 8월부터 11월까지, 아파트 부엌에 차린 임시 스튜디오에서 레복스 테이프 녹음기 두 대로 만들었다. 모두 여섯 부분이다. 재킷에는 미셸 그랑제의 수채화가 실렸는데, 갈라진 지구 속에서 해골이 드러나는 그림이다. 여러 레이블이 안 팔릴 음반이라며 퇴짜를 놓았고, 아일랜드 레코드도 그중 하나였다. 그런 음반이 2016년까지 천팔백만 장 팔렸다. 싱글로 나온 "Part IV" 가 영국 차트 4위까지 올랐지만, 이 음반의 알맹이는 "Part II" 다. 여기서 시작한다. 다들 여기서 시작하고, 그게 맞다.

Play first"Oxygène (Part II)". 페이저를 건 스트링이 에미넌트 오르간이고, 밑에서 도는 것이 시퀀스다. 그 위에 파리가 얹혀 있다.
2Équinoxe cover

Équinoxe

1978 · 디스크 드레퓌스 · 여덟 부분

같은 발상에 이번에는 돈이 들어갔다. 여덟 부분에 16트랙 녹음기, 그리고 미셸 가이스가 자르에게 만들어 준 마트리시퀀서 250 이 있다. 오십 음짜리 줄 두 개를 가진 이 기계가 음반의 중심 악기다. Oxygène 의 어느 곡보다 빠르고 바쁘게 돈다. 첫 음반이 둥둥 떠다닌다면 이 음반은 발맞춰 걷는다. "Part 5" 는 거의 디스코이고 "Part 7" 은 폭풍이다. 재킷 그림은 그랑제의 「Le trac」, 무대공포증이라는 뜻이다. 영국 앨범 차트 11위에 올랐고, 프랑스에서만 백오십만 장이 팔렸다. 두 번째로 듣는 까닭은 돈이 생겼을 때 그가 무엇을 했는지 들을 수 있어서다.

Play first"Équinoxe Part 5". 그다음 "Part 7". 이 사이트에 나오는 곡 가운데 시퀀서가 가장 빠르게 도는 곡이 Part 7 이다.
3Les Chants Magnétiques cover

Les Chants Magnétiques

1981 · 디스크 드레퓌스 · 다섯 부분 · 영어권 제목은 Magnetic Fields

페어라이트가 들어오면서 샘플링도 함께 들어온다. 이 기계를 쓴 음반 가운데 가장 이른 축에 든다. 자르는 음반 한 장을 통째로 들여 샘플러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아 간다. "Part 1" 은 17분 50초 동안 한시도 가만있지 않는다. 싱글로 나온 "Part 2" 덕분에 이 음반이 팔렸다. 영국 6위, 미국 빌보드 200 98위. 세 번째로 듣는 까닭은 이 음반이 전환점이라서다. 이 음반 전의 그는 팝을 쓰는 신시사이저 음악가였고, 이후의 그는 신시사이저를 쓰는 팝 음악가다.

Play first"Les Chants Magnétiques Part 1". 17분 50초를 끊지 말고 듣는다. 착상을 세어 보라.
4Zoolook cover

Zoolook

1984 · 디스크 드레퓌스 · 일곱 곡 · 37분 58초

낯설고, 평론가들이 아끼고, 팔리지 않은 음반. 스물다섯 개 언어로 된 노래와 말소리를 페어라이트 CMI 로 따고 잘라 리듬으로 엮었다. 기타는 에이드리언 블루, 베이스는 마커스 밀러가 쳤고, 로리 앤더슨이 "Diva" 에 목소리를 얹었다. 영국 차트 47위에 그쳤다. 그가 만든 음반 가운데 가장 독창적이고, Oxygène 과는 가장 거리가 멀다. 대중적인 음악은 그가 골라서 한 일이었다는 것을 이 음반이 보여 준다. 네 번째로 들어라. 처음에 들으면 겁먹고 달아나게 되고, 끝내 안 들으면 그를 쇼맨으로만 기억하게 된다.

Play first"Zoolook". 그다음 "Ethnicolor". 목소리가 악기로 바뀌는 자리를 찾아보라.
5Rendez-Vous cover

Rendez-Vous

1986 · 디스크 드레퓌스 · 여섯 곡

경기장을 위한 음반이다. 나흘 뒤 휴스턴에 모일 백오십만 명을 생각하고 만들었고, 소리부터 그렇다. 금관악기처럼 두툼한 신시사이저 팡파르, 멀리서 들어야 제대로 퍼지는 합창 패드. 마지막 곡의 색소폰은 원래 우주에서 녹음할 계획이었다. 우주비행사 론 맥네어가 우주왕복선 챌린저 안에서 불기로 했다. 1986년 1월 28일, 챌린저는 이륙 73초 만에 부서졌고 승무원 일곱 명이 모두 숨졌다. 색소폰은 프랑스 재즈 연주자 피에르 고세즈가 대신 불었고, 자르는 이 곡을 맥네어와 동료들에게 바쳤다. 마지막에 듣는 까닭은 여기서 부엌이 끝나고 세계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Play first"Rendez-Vous II". 그다음 "Rendez-Vous VI". 색소폰이 들어오면 아래 문단을 읽어라.

지금까지 들은 것

베를린의 시퀀스를 가져와, 음반을 낼 때마다 이 소리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닿을 수 있을지 물은 사람. 부엌, 스튜디오, 샘플러, 목소리, 도시. 닿을 수 있는 사람은 결국 모두였다. 이 사이트에 나오는 음악가 가운데 부모님 음반장에 판이 꽂혀 있는 사람은 그뿐이고, 이 음악을 사건으로 만든 사람도 그뿐이다. 베를린은 끝내 그를 용서하지 않았다. 우리까지 그럴 필요는 없다.

파리의 주택가 거리
파리 16구의 한 거리. Oxygène 을 만든 부엌은 이곳이 아니라 8구 트레무아유 거리 12번지, 샹젤리제에서 몇 블록 떨어진 아파트에 있었다. Photo: F1375 Paris XVI rue Chernoviz rwk by Mbzt, CC BY-SA 4.0, via Wikimedia Commons. Resized from the original.
1976–1981

파리, 아날로그

Oxygène, Équinoxe, Les Chants Magnétiques, 그리고 중국 공연. 이 안내에서 다룬 음반들이고, 그가 이 사이트에 오른 까닭이다.

1984–1990

샘플러와 경기장

Zoolook, Rendez-Vous, 휴스턴, 런던 도클랜즈. 공연 자체가 상품이 된다.

1993–2007

긴 가운데

Chronologie 는 좋고, Oxygène 7–13 은 이름값을 하는 속편이다.

2015–현재

일렉트로니카

탠저린 드림에서 펫 숍 보이스까지 온갖 사람과 함께 작업했고, 모듈러로 돌아왔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도 음악이 좋다.

다음에 들을 것들

어디서 구하나

Oxygène 앨범 표지장 미셸 자르 · AmazonCD 와 LP 로 지금 구할 수 있는 것들.Oxygène 앨범 표지장 미셸 자르 · Discogs앨범 목록으로 간다. 위의 다섯 장이 전부 여기 있고, 판마다 무엇이 다른지도 함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