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게 말하면
- 1980년 5월 캐니언에서 나온 NHK 다큐멘터리 『실크로드』 음악이다. 모두 열두 곡.
- 기타로는 방송을 스테레오로 내보내 달라고 요구했다. 화면 뒤에 까는 음악으로 두지 않고, 귀 기울여 듣는 음악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 악기는 사실상 셋이다. 미니무그, 미니코르그 700, 맥시코르그 DV800.
- 방송은 평균 시청률 20% 를 기록했고, 사운드트랙 연작은 수백만 장이 팔렸다.
1980년 4월 7일 밤, 일본 텔레비전에 아무도 본 적 없는 땅이 나왔다. 개혁개방 이후 외국 방송팀으로는 처음으로 중국 땅 안의 실크로드 지역에 들어가 찍어 온 화면이었다. 내레이션은 이시자카 고지가 맡았고, 그 밑으로 신시사이저 소리가 깔렸다. 음악을 만든 스물일곱 살 남자는 이미 방송국에 한 가지를 요구해 두었다. 이 프로그램을 스테레오로 내보내 달라는 것이었다.
1980년 일본 텔레비전에서 흔히 하는 요구가 아니었다. 다큐멘터리 음악은 화면 뒤에 깔리는 것이고, 뒤에 깔리는 소리에 좌우 채널을 따로 주는 것은 사치였다. 그 요구가 받아들여졌다는 데서 이 음반의 성격이 다 드러난다. 처음부터 귀로 들으라고 만든 음반이다.
이 음반의 음악사적 위치

기타로가 여기까지 온 길은 「기타로, 어디서 시작할까」에 적었다. 간추리면 이렇다. 밴드 시절 유럽에서 클라우스 슐체를 만났다. 1975년 슐체는 기타로가 몸담은 밴드의 음반 한 장을 믹스하고 다음 한 장을 제작하면서 신시사이저 다루는 요령을 알려 주었고, 기타로는 그 요령을 들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배운 것이 처음으로 많은 사람에게 가 닿은 음반이 이것이다.
베를린 쪽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 베를린은 되풀이하는 기계 위에 시간을 쌓아 올렸다. 여기서 반복은 뼈대가 아니라 바닥에 깔리고, 그 위로 선율이 올라온다. 선율은 오음계이고 미니무그 리드가 연주한다. 같은 기계를 쓰는데도 소리가 달라지는 까닭이다. 곡도 짧다. 열두 곡 가운데 가장 긴 곡이 5분 30초 남짓이다. 화면에 맞춰 쓴 음악이라 그렇다. 그 제약 덕분에 이 판은 이 사이트에서 다룬 음반 가운데 가장 쉽게 들어갈 수 있는 판이 됐다.
- 발매
- 1980년 5월, 캐니언 C25R0038
- 음악
- 기타로 혼자
- 악기
- 미니무그, 미니코르그 700, 맥시코르그 DV800
- 쓰인 곳
- NHK 특집 『실크로드』 12부, 1980-04-07 ~ 1981-03-02
- 내레이션
- 이시자카 고지
- 수상
- 제18회 갤럭시상 텔레비전 부문 선장(選奨)
- 곡 수
- 열두 곡
악기 목록이 짧다는 점은 짚어 둘 만하다. 미니무그는 한 번에 한 음밖에 못 낸다. 코르그 두 대도 큰 기계가 아니다. 이 판의 넓은 소리는 장비보다 배치에서 나온다. 소리 하나를 길게 깔고, 그 위에 선율 한 줄을 얹고, 나머지는 비워 둔다.
트랙리스트
| 1 | Silk Road Theme | 4:12 |
| 2 | Bell Tower | 2:27 |
| 3 | Heavenly Father | 4:07 |
| 4 | The Great River | 2:40 |
| 5 | The Great Wall of China | 1:54 |
| 6 | Flying Celestial Nymphs | 4:38 |
| 7 | Silk Road Fantasy | 4:40 |
| 8 | Shimmering Light | 3:20 |
| 9 | Westbound | 2:57 |
| 10 | Time | 3:30 |
| 11 | Bodhisattva | 2:12 |
| 12 | Everlasting Road | 5:33 |
판마다 곡 이름이 조금씩 다르고, 길이도 몇 초씩 차이가 난다. 위 목록은 1980년 캐니언 판을 따랐다. 서구에서는 이 판과 2권을 묶은 Silk Road Suite 가 먼저 나왔는데, 거기서는 몇 곡에 다른 이름이 붙었다.
세 곡 따라 듣기
"Silk Road Theme"(4:12). 첫 곡이고, 연작 전체를 대표하는 곡이다. 귀 기울일 곳은 선율보다 선율이 들어오기 직전이다. 낮은 소리가 먼저 깔리고 한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다 미니무그 한 줄이 위로 올라온다. 딱 한 줄이다. 화음도 대선율도 없다. 이 곡이 10년 넘게 사람들 머릿속에 남은 것은 그 빈 공간 덕분이다. 화면이 사막을 가로지르는 동안 음악은 자리를 다 차지하지 않는다.
"Flying Celestial Nymphs"(4:38). 판 한가운데 놓인 곡이고, 이 판에서 가장 아름다운 4분이다. 제목의 비천은 둔황 벽화 속을 떠다니는 형상이다. 여기서는 소리의 꼬리를 들어라. 앞뒤 곡보다 공간이 길게 열려 있어서, 선율이 끝난 뒤에도 소리가 한동안 남는다. 스테레오를 고집한 사람이 무엇을 노렸는지 이 곡에서 가장 잘 들린다. 좌우로 넓게 벌려 놓은 자리를 아무것도 채우지 않고 비워 두었다.
"Everlasting Road"(5:33). 마지막 곡이자 이 판에서 가장 긴 곡이다. 다른 곡이 저마다 장면 하나를 맡는다면, 이 곡은 연작 전체를 마무리한다. 여기서는 되풀이되는 횟수를 세어 보라. 같은 음형이 돌아올 때마다 그 위에 얹히는 소리가 하나씩 늘어난다. 베를린이 20분에 걸쳐 하던 일을 5분 30초 남짓에 해내는 셈이다.
나머지 곡
짧은 곡들은 장면 음악이다. "Bell Tower"(2:27)와 "The Great Wall of China"(1:54)는 3분이 안 되는 곡이라, 화면 없이 들으면 스케치처럼 스쳐 간다. 그래도 건너뛰지 않는 편이 좋다. 긴 곡 사이에서 숨 돌릴 틈을 만드는 것이 이 짧은 곡들이다. "Westbound"(2:57)는 이 판에서 유일하게 걸음이 빠른 곡이고, 뒤이은 "Time"(3:30)이 다시 속도를 늦추며 마지막을 준비한다.
이렇게 들어라
- 낮에 틀어라. 슐체가 밤이라면 이 판은 해 뜨고 1시간쯤 지난 아침이다. 어둠 속에서 들으라고 만든 음악이 아니다.
- 스테레오로 들어라. 싱거운 말 같지만, 스테레오는 이 판이 싸워서 얻어 낸 것이다. 휴대전화 스피커로 들으면 이 음반의 절반이 사라진다.
-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장면 음악이라 곡이 짧고, 짧은 곡은 이어 들어야 의미가 생긴다.
- 틀어 놓고 다른 일을 해도 된다. 원래 화면 뒤에 깔리던 음악이다. 그렇게 들어도 놓치는 것이 없다.
그다음에 일어난 일
방송은 평균 시청률 20% 를 기록했다. 기타로는 이 음악으로 제18회 갤럭시상 텔레비전 부문에서 선장(選奨)을 받았고, 사운드트랙 연작은 수백만 장이 팔렸다. 같은 해 10월에 2권, 1981년 7월에 3권, 1983년에 4권이 나왔다.
그다음은 해외였다. 독일 쿠쿡이 1권과 2권을 묶어 Silk Road Suite 로 냈다. 이어 유럽에서는 폴리도르 판이, 미국에서는 그라마비전 판이 나왔고, 1985년에서 1986년 사이에 게펜과 세계 배급 계약을 맺었다. 이때 기타로가 앞서 낸 음반 여섯 장이 다시 나왔다. 이 사이트가 다루는 다섯 사람 가운데 서구 밖에서 출발해 서구로 건너간 사람은 기타로뿐이다. 그 다리가 된 것이 이 다큐멘터리였다.
친구에게 보낼 한 곡
"Silk Road Theme" 을 보낸다. 4분짜리라고 미리 말해 둔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인다. 이 음악이 흘러나온 방송은 개혁개방 이후 외국 방송팀으로는 처음 중국의 실크로드 지역에 들어가 찍은 것이고, 작곡가는 그 방송을 스테레오로 내보내 달라고 요구했다. 1980년 텔레비전에서 그 요구는 배경음악으로 머물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사막을 가로지르는 화면 아래로 선율 한 줄이 올라오고, 좌우로 벌려 놓은 자리는 비어 있다. 그 빈자리가 곧 이 음반이다.
어디서 구하나
일본 캐니언 원반이 이 판의 얼굴이다. 서구에서는 1권과 2권을 묶은 Silk Road Suite 가 쿠쿡·그라마비전·도모를 거치며 계속 나왔고, 구하기는 그쪽이 쉽다. 다만 곡 이름이 달라 붙어 있으니 위 목록과 견주며 보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