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게 말하면
- Timewind → Moondawn → Mirage → X → Body Love. 이 순서로, 밤에 듣는다.
- 앨범마다 한 곡씩 끊지 말고 끝까지 듣는다. 조금씩 바뀌어 가는 그 흐름이 곧 음악이다.
- Irrlicht, Cyborg, Dune, 그리고 1980년 이후 앨범은 다음 달에 듣는다.
- 예순 장이 막막했다면, 우선 다섯 장만 들으면 된다.
klausdream 의 "klaus" 가 바로 이 사람이다. 그런데 탠저린 드림보다 발을 들이기가 어렵다. 음악이 더 어려워서가 아니다. 앨범이 너무 많고, 그 앨범들이 서로 너무 닮았다. 1972년부터 2022년까지 낸 솔로 앨범만 예순 장이다. 1947년에 태어나 2022년에 세상을 떠났으니 평생을 거의 이 소리에 바친 셈이다. 대부분은 혼자 앉아 LP 한 면에 담을 수 있는 만큼 길게 연주한 곡이다. 처음에 잘못 고르면 30분 동안 둥둥 떠다니는 소리만 듣다가 지루한 사람이라며 덮게 된다. 제대로 고르면 신시사이저로 만든 음악 가운데 가장 참을성 있는 음악을 만난다.

목록에 앞서 알아 둘 것이 하나 있다. 슐체는 드러머로 출발했다. 탠저린 드림에서 1년, 이어서 아쉬 라 템펠에서 드럼을 쳤다. 그리고 평생 드러머의 감각으로 곡을 만들었다. 탠저린 드림이 소리를 겹겹이 쌓아 곡을 짓는다면, 슐체는 맥박 하나로 곡을 끌고 간다. 시퀀서 한 줄을 깔고, 때로는 그 위에 진짜 드럼을 얹는다. 그러고는 15분이나 20분에 걸쳐 아주 천천히 바꿔 나간다. 바뀌는 폭은 작다. 그런데 그 작은 변화가 전부다. 처음 들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느낀다. 세 번쯤 들으면 그 안에서 온갖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게 들린다.
그래서 아래 순서는 쉬운 판에서 어려운 판으로 간다. 그리고 1970년대 안에서 끝낸다. 승부는 거기서 난다. 1980년대 이후는 다음 달에 들어도 늦지 않다.
듣기 전에
- 밤에 듣는다. 분위기를 잡자는 말이 아니다. 밤에 만든 음악이라 밤에 들어야 제대로 들린다.
- 곡 중간을 건너뛰지 않는다. 곡의 뼈대가 바로 그 변화라서, 건너뛰면 통째로 놓친다.
- 판을 산다면 Brain Records 에서 나온 독일 원판을 찾는다. Body Love 만은 초판이 Metronome 에서 나왔다. 2000년대 SPV/Revisited 재발매도 괜찮고 값이 더 싸다.
다섯 장, 순서대로

Timewind
다들 여기서 시작하고, 그게 맞다. 두 곡 모두 이름을 바그너의 바이로이트에서 따왔다. 둘 다 시퀀스 하나를 바탕으로 짠 곡인데, 그 시퀀스는 쉬지 않고 달리면서도 똑같이 되풀이되는 법이 없다. 무그는 아직 없다. 무그는 다음 앨범에서 들어온다. "Bayreuth Return" 은 슐체의 곡 중 히트곡에 가장 가깝고, 듣는 사람의 시간을 통째로 요구한다. 슐체를 한 장만 듣겠다면 이 판을 처음부터 끝까지 듣는다.

Moondawn
같은 방식에 드러머를 더했고, 그 드러머가 모든 것을 바꿨다. 하랄트 그로스코프는 기계를 쫓아가느라 바쁘면서도 그게 즐거운 사람처럼 드럼을 친다. 이 음악은 힘이 없다고 여기는 사람의 마음을 돌려놓을 곡이 "Floating" 이다. 모듈을 벽처럼 쌓은 슐체의 빅 무그가 제 모습을 온전히 드러내는 판이기도 하다. Timewind 다음에 두는 이유는 간단하다. Timewind 를 듣고 나면 맥박이 박자로 바뀌는 순간을 듣고 싶어진다.

Mirage
부제가 "전자적 겨울 풍경" 인데, 딱 그런 판이다. 드럼도 온기도 없다. 1월에 불을 끄고 듣도록 만든 음반이다. 다섯 장 중 가장 조용하고, 좋아지기까지 대개 가장 오래 걸린다. 그래서 첫 번째가 아닌 세 번째에 둔다. 여기까지 오면 기다리는 법을 알게 된다. 들어야 할 곡은 "Crystal Lake" 다. 시퀀스 하나가 천천히 얼었다가 천천히 녹는다.

X
다섯 장 중 덩치가 가장 크다. 두 장짜리 앨범이고, 여섯 곡이 저마다 한 사람을 그린다. 니체, 시인 게오르크 트라클, 루트비히 2세 같은 이들이다. 방 안에서 혼자 연주하던 슐체가 작곡가로 넘어가는 판이다. "Ludwig II. von Bayern" 에는 현악이 들어가고, "Friedrich Nietzsche" 에서는 그로스코프가 다시 드럼을 맡는다. 넘치고 길다. 팬들 사이에서 말이 가장 많은 판이기도 하다. 네 번째에 두는 까닭은 여기까지 온 사람이라면 이 판을 들을 자격이 있어서다. 그리고 "Friedrich Nietzsche" 는 슐체가 남긴 곡 가운데 최고다.

Body Love
맞다, 라세 브라운의 성인영화에 쓴 음악이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슐체는 의뢰를 받아 놓고 어차피 만들려던 음악을 만들었고, 그렇게 전성기 앨범 중 가장 느긋하고 선율이 살아 있는 판이 나왔다. "Blanche" 는 사람들이 서로 권하며 돌려 듣는 곡이다. 마지막에 두는 까닭은 다섯 장 중 가장 듣기 편해서다. 이 판을 먼저 들었다면 나머지도 이럴 거라 기대했을 테고, 그러면 길을 잃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들은 것
앨범 다섯 장, 4년. 한 사람이 긴 솔로 신시사이저 곡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사람들 앞에서 하나씩 알아 간 기록이다. 드럼 없는 맥박, 드럼이 붙은 맥박, 얼어붙은 맥박, 관현악을 입은 맥박, 느긋해진 맥박. 그 뒤 45년 동안 슐체가 한 모든 작업이 이 다섯 장의 변주다. 스티브 로치도, 레드시프트도, 요즘 앰비언트 테크노의 상당수도 같은 방에서 나왔다. 여기까지 왔다면 Electronic Meditation 으로 거슬러 올라가 본다. 이 모든 것이 시작되기 전의 드러머 슐체가 거기 있다.
오르간과 테이프
Irrlicht, Cyborg, Blackdance. 시퀀서가 들어오기 전이다. 필터를 거친 관현악, 교회 오르간, 드론. 낯설고 느리다.
빅 무그
이 글에서 다룬 판이 모두 여기 있다. 시퀀서와 Brain Records 의 시절이고, 슐체의 정점이다.
디지털
GDS 와 페어라이트, 짧아진 곡들. Dig It, Audentity, En=Trance. 낡게 들리는 판도 있고, 그의 최고작으로 꼽을 판도 있다.
긴 꼬리
샘플링을 거쳐 다시 아날로그로 돌아온다. Moonlake, 리사 제라드와 함께 만든 음반들, 그리고 세상을 떠나고 몇 주 뒤에 나온 Deus Arrakis.
다음에 들을 것들





어디서 구하나
이 글에 나온 음반을 구하는 곳이다. 새 CD·LP 는 Amazon 에서, 옛 판과 중고는 Discogs 에서 찾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