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스 슐체를 듣는 사람의 집. 낮은 장 위에 턴테이블과 스피커가 놓이고, 그 위 벽에 1미터짜리 Mirage 표지 액자가 걸려 있다Photo © klausdream
Listening guide · No. 4

클라우스 슐체, 어디서 시작할까

한 사람이 50년 동안 낸 솔로 앨범이 예순 장이다. 그중 다섯 장을 어떤 순서로 들으면 되는지 짚는다.

짧게 말하면

klausdream 의 "klaus" 가 바로 이 사람이다. 그런데 탠저린 드림보다 발을 들이기가 어렵다. 음악이 더 어려워서가 아니다. 앨범이 너무 많고, 그 앨범들이 서로 너무 닮았다. 1972년부터 2022년까지 낸 솔로 앨범만 예순 장이다. 1947년에 태어나 2022년에 세상을 떠났으니 평생을 거의 이 소리에 바친 셈이다. 대부분은 혼자 앉아 LP 한 면에 담을 수 있는 만큼 길게 연주한 곡이다. 처음에 잘못 고르면 30분 동안 둥둥 떠다니는 소리만 듣다가 지루한 사람이라며 덮게 된다. 제대로 고르면 신시사이저로 만든 음악 가운데 가장 참을성 있는 음악을 만난다.

Mirage 앨범 표지
Mirage, 1977. 아래 다섯 장 중 세 번째로 듣는 판이다. 가장 조용하고, 좋아지기까지 대개 가장 오래 걸린다. Low-resolution scan for identification.

목록에 앞서 알아 둘 것이 하나 있다. 슐체는 드러머로 출발했다. 탠저린 드림에서 1년, 이어서 아쉬 라 템펠에서 드럼을 쳤다. 그리고 평생 드러머의 감각으로 곡을 만들었다. 탠저린 드림이 소리를 겹겹이 쌓아 곡을 짓는다면, 슐체는 맥박 하나로 곡을 끌고 간다. 시퀀서 한 줄을 깔고, 때로는 그 위에 진짜 드럼을 얹는다. 그러고는 15분이나 20분에 걸쳐 아주 천천히 바꿔 나간다. 바뀌는 폭은 작다. 그런데 그 작은 변화가 전부다. 처음 들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느낀다. 세 번쯤 들으면 그 안에서 온갖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게 들린다.

그래서 아래 순서는 쉬운 판에서 어려운 판으로 간다. 그리고 1970년대 안에서 끝낸다. 승부는 거기서 난다. 1980년대 이후는 다음 달에 들어도 늦지 않다.

듣기 전에

다섯 장, 순서대로

1Timewind cover

Timewind

1975 · Brain · 두 곡

다들 여기서 시작하고, 그게 맞다. 두 곡 모두 이름을 바그너의 바이로이트에서 따왔다. 둘 다 시퀀스 하나를 바탕으로 짠 곡인데, 그 시퀀스는 쉬지 않고 달리면서도 똑같이 되풀이되는 법이 없다. 무그는 아직 없다. 무그는 다음 앨범에서 들어온다. "Bayreuth Return" 은 슐체의 곡 중 히트곡에 가장 가깝고, 듣는 사람의 시간을 통째로 요구한다. 슐체를 한 장만 듣겠다면 이 판을 처음부터 끝까지 듣는다.

Play first"Bayreuth Return". 시퀀스가 곧바로 시작한다. 언제부터 그 소리를 의식하지 않게 되는지 지켜본다.
2Moondawn cover

Moondawn

1976 · Brain · 두 곡 · 드럼 하랄트 그로스코프

같은 방식에 드러머를 더했고, 그 드러머가 모든 것을 바꿨다. 하랄트 그로스코프는 기계를 쫓아가느라 바쁘면서도 그게 즐거운 사람처럼 드럼을 친다. 이 음악은 힘이 없다고 여기는 사람의 마음을 돌려놓을 곡이 "Floating" 이다. 모듈을 벽처럼 쌓은 슐체의 빅 무그가 제 모습을 온전히 드러내는 판이기도 하다. Timewind 다음에 두는 이유는 간단하다. Timewind 를 듣고 나면 맥박이 박자로 바뀌는 순간을 듣고 싶어진다.

Play first"Floating". 몇 분 뒤 드럼이 들어오면서 곡이 날아오른다.
3Mirage cover

Mirage

1977 · Brain · 두 곡

부제가 "전자적 겨울 풍경" 인데, 딱 그런 판이다. 드럼도 온기도 없다. 1월에 불을 끄고 듣도록 만든 음반이다. 다섯 장 중 가장 조용하고, 좋아지기까지 대개 가장 오래 걸린다. 그래서 첫 번째가 아닌 세 번째에 둔다. 여기까지 오면 기다리는 법을 알게 된다. 들어야 할 곡은 "Crystal Lake" 다. 시퀀스 하나가 천천히 얼었다가 천천히 녹는다.

Play first"Crystal Lake". 헤드폰으로 듣고, 시계는 보지 않는다.
4X cover

X

1978 · Brain · 두 장짜리, 여섯 곡 · 한 면에 오케스트라

다섯 장 중 덩치가 가장 크다. 두 장짜리 앨범이고, 여섯 곡이 저마다 한 사람을 그린다. 니체, 시인 게오르크 트라클, 루트비히 2세 같은 이들이다. 방 안에서 혼자 연주하던 슐체가 작곡가로 넘어가는 판이다. "Ludwig II. von Bayern" 에는 현악이 들어가고, "Friedrich Nietzsche" 에서는 그로스코프가 다시 드럼을 맡는다. 넘치고 길다. 팬들 사이에서 말이 가장 많은 판이기도 하다. 네 번째에 두는 까닭은 여기까지 온 사람이라면 이 판을 들을 자격이 있어서다. 그리고 "Friedrich Nietzsche" 는 슐체가 남긴 곡 가운데 최고다.

Play first"Friedrich Nietzsche". 첫 번째 면이다. 이 곡이 귀에 맞으면 나머지 세 면도 맞는다.
5Body Love cover

Body Love

1977 · Metronome · 세 곡 · 영화음악

맞다, 라세 브라운의 성인영화에 쓴 음악이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슐체는 의뢰를 받아 놓고 어차피 만들려던 음악을 만들었고, 그렇게 전성기 앨범 중 가장 느긋하고 선율이 살아 있는 판이 나왔다. "Blanche" 는 사람들이 서로 권하며 돌려 듣는 곡이다. 마지막에 두는 까닭은 다섯 장 중 가장 듣기 편해서다. 이 판을 먼저 들었다면 나머지도 이럴 거라 기대했을 테고, 그러면 길을 잃었을 것이다.

Play first"Blanche". 짧은 곡이다. 초반에 나오는 선율을 따라 들어가면 된다.

지금까지 들은 것

앨범 다섯 장, 4년. 한 사람이 긴 솔로 신시사이저 곡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사람들 앞에서 하나씩 알아 간 기록이다. 드럼 없는 맥박, 드럼이 붙은 맥박, 얼어붙은 맥박, 관현악을 입은 맥박, 느긋해진 맥박. 그 뒤 45년 동안 슐체가 한 모든 작업이 이 다섯 장의 변주다. 스티브 로치도, 레드시프트도, 요즘 앰비언트 테크노의 상당수도 같은 방에서 나왔다. 여기까지 왔다면 Electronic Meditation 으로 거슬러 올라가 본다. 이 모든 것이 시작되기 전의 드러머 슐체가 거기 있다.

1972–1974

오르간과 테이프

Irrlicht, Cyborg, Blackdance. 시퀀서가 들어오기 전이다. 필터를 거친 관현악, 교회 오르간, 드론. 낯설고 느리다.

1975–1979

빅 무그

이 글에서 다룬 판이 모두 여기 있다. 시퀀서와 Brain Records 의 시절이고, 슐체의 정점이다.

1980–1989

디지털

GDS 와 페어라이트, 짧아진 곡들. Dig It, Audentity, En=Trance. 낡게 들리는 판도 있고, 그의 최고작으로 꼽을 판도 있다.

1990–2022

긴 꼬리

샘플링을 거쳐 다시 아날로그로 돌아온다. Moonlake, 리사 제라드와 함께 만든 음반들, 그리고 세상을 떠나고 몇 주 뒤에 나온 Deus Arrakis.

다음에 들을 것들

무그 모듈러 신시사이저 모듈을 가까이서 찍은 사진. 손잡이와 패치 단자가 보인다
무그 모듈을 가까이서 찍은 사진. 슐체의 "빅 무그" 는 이런 모듈을 쌓아 올린 기계였다. 그 소리는 1976년 Moondawn 에서 온전히 들린다. 슐체가 무그로 만든 첫 음반이다. Photo: Moog 921, 911, 902 modules by Gordon Joly from London, UK,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Resized from the original.

어디서 구하나

이 글에 나온 음반을 구하는 곳이다. 새 CD·LP 는 Amazon 에서, 옛 판과 중고는 Discogs 에서 찾는다.

Timewind 앨범 표지Timewind · Amazon새 CD·LP 검색 결과.Timewind 앨범 표지Timewind · Discogs발매된 모든 판과 중고 매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