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무그 3P 모듈러 신시사이저. 나무 판과 패치 케이블Photo: EJ Posselius from Boulder, USA · Wikimedia Commons · CC BY-SA 2.0
Album · No. 3

Phaedra

명반이라는 단어로 설명되기 부족한 20세기 클래식 전자음악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앨범. 영국 시골집에서의 육 주가 안 되는 시간, 음이 자꾸 어긋나던 중고 무그, 그리고 알맞은 순간에 돌아가고 있던 테이프. 베를린 스쿨에 소리를 준 음반이다.

짧게 말하면

타이틀곡을 처음 들으면 열에 아홉은 테이프가 늘어난 줄 안다. 십일 분쯤에서 곡 전체가 푹 주저앉는다. 시퀀스가 아래로 스르르 미끄러지고, 몇 초 동안은 기계가 숨을 거두는 소리처럼 들린다. 고장이 아니었다. 옥스퍼드셔의 추운 방에 놓인 무그 모듈러가 난방이 돌면서 음이 풀린 것이고, 베를린에서 온 세 사람이 그걸 지우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이 앨범은 그 판단 하나로 남았다.

이 음반의 음악사적 위치

Phaedra 앨범 표지. 어두운 그림 위에 작게 빛나는 형상
Phaedra, Virgin V2010, 1974년 2월 20일 발매. 표지 그림은 에드가 프뢰제. Low-resolution scan for identification.

1973년이 저물 무렵 탠저린 드림에게는 독일 레이블 Ohr 에서 낸 넉 장이 있었다. 뒤로 갈수록 낯설어지고 조용해졌다. Zeit(1972)는 일흔두 분 동안 거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아름답다. 이듬해 Atem(1973)이 존 필의 귀에 걸려 그해의 음반 가운데 하나로 꼽혔다. 그 소문이 런던의 스물세 살 음반가게 주인에게까지 갔다. Tubular Bells 를 막 내놓고 다음 패를 찾던 사람, 리처드 브랜슨이다. 그가 밴드를 버진으로 데려갔다. 계약금은 무그 모듈러 한 벌과 영국행 비행기표가 됐다.

녹음은 1973년 11월과 12월, 옥스퍼드셔 십턴온처웰의 시골집에 있던 버진의 스튜디오 더 매너에서 했다. 엔지니어는 필 베크. 증언을 모아 보면 거의 마지막까지 이 음반이 무엇이 될지 아무도 몰랐다. 밴드도 몰랐다.

녹음
1973년 11~12월, 옥스퍼드셔 십턴온처웰 더 매너
발매
1974년 2월 20일, Virgin Records
구성
에드가 프뢰제, 크리스토퍼 프랑케, 페터 바우만
악기
960 시퀀서를 단 무그 모듈러, 멜로트론 M400, VCS 3, 파르피사와 펜더 로즈, 오르간, 플루트, 기타
차트
영국 15위. 라디오는 거의 틀지 않았다. 영국 골드 인증
길이
37:46

버진에서 낸 첫 장이고, 시퀀서를 한복판에 세운 첫 장이고, 독일 밖에서 진짜로 팔린 첫 장이다. 이 셋은 이후 사 년을 더 함께 간다. 사람들이 "고전기 탠저린 드림" 이라고 말할 때 떠올리는 RubyconRicochet 은 그 사이에 나온다. 다만 출발점은 여기다.

에드가 프뢰제
창립자 · 기타, 멜로트론, VCS 3

에드가 프뢰제

스물아홉. 표지를 직접 그렸다. 두 번째 곡은 혼자 쳤다.

크리스토퍼 프랑케
무그, 시퀀서, 드럼

크리스토퍼 프랑케

스물. 타이틀곡의 그 일이 벌어지던 순간 무그 앞에 앉아 있던 사람. 사진은 최근 것이다.

페터 바우만
오르간, 로즈, VCS 3, 플루트

페터 바우만

스물. 마지막 곡을 혼자 쓰고 혼자 쳤다. 1977년에 밴드를 떠난다.

트랙리스트

A1 Phaedra · 프뢰제, 프랑케, 바우만 17:39
B1 Mysterious Semblance at the Strand of Nightmares · 프뢰제 9:55
B2 Movements of a Visionary · 프뢰제, 프랑케, 바우만 7:55
B3 Sequent C' · 바우만 2:17

곡은 넷. 한 면을 한 곡이 통째로 쓰고, 뒷면에 셋이 들어간다. 마지막 곡은 이 분을 겨우 넘긴다. 아래는 타이틀곡을 분 단위로 따라간 것이다. 이 곡이 이런 음악을 짓는 법을 나머지 모두에게 가르쳤고, 한 번 이렇게 듣고 나면 예전 귀로는 못 돌아간다.

"Phaedra" 17분 39초, 분 단위로

0:00
안개. 낮은 드론. 부풀었다 잦아드는 멜로트론 화음. 멀리서 플루트 비슷한 소리가 지나간다. 맥박은 아직 없다. 이 분 가까이 기다리게 되는데, 무엇을 기다리는지는 본인도 모른다.
1:55
시퀀스가 들어온다. 낮은 여덟 음, 무그 960 에서 나온다. 여기가 그 순간이다. 소리가 커서가 아니다. 이때부터 곡에 바닥이 생기고, 나머지가 전부 그 위에 얹히기 때문이다. 프랑케가 손잡이를 음마다 하나씩 돌려 맞춰 둔 여덟 음이다.
3:30
필터가 열린다. 음은 그대로인데 소리가 밝아진다. 기계가 놓인 방으로 문 하나가 열린 느낌이다. 바뀐 것은 음색뿐이다. 신시사이저 하는 사람들이 "선율 없는 움직임" 이라고 부르는 것이 이것이다.
5:40
두 번째 음형이 어긋나게 끼어든다. 길이가 미세하게 달라서 둘이 맞았다 어긋났다를 되풀이한다. 스티브 라이히가 육십년대에 테이프 루프로 하던 짓을, 이쪽은 시퀀서 두 대로 하고 곡이라고 불렀다.
8:00
프뢰제의 멜로트론이 위로 올라온다. 합창과 현 테이프, 느린 화음. 아래 맥박과 일부러 발을 맞추지 않는다. 바닥에 이어 하늘이 생긴다.
10:50
어긋남. 더 매너의 방이 데워지고 무그의 발진기도 따라 데워지면서 시퀀스가 아래로 미끄러진다. 그러다 더 미끄러진다. 누가 들어도 고장이다. 그들은 그대로 뒀다. 무그가 가라앉는 동안 멜로트론이 제 높이를 지키는 대목을 들어 보라. 전자음악에서 가장 유명한 사고이고, 아주 많은 사람이 이 음반에 붙들린 이유다.
12:30
무너짐, 그리고 침묵. 시퀀스가 멎는다. 남는 것은 바람, 플루트 몇 음, 물소리.
14:00
새 풍경. 느린 멜로트론, 끝내 리듬이 되지 못하는 먼 맥박. 마지막 삼 분은 첫 이 분을 뒤에서 다시 본 것이다.
17:39
끝. 음반을 뒤집는다.

나머지 곡들

"Mysterious Semblance at the Strand of Nightmares" 는 프뢰제가 멜로트론과 페이저만 놓고 혼자 친 곡이다. 이 음악이 차갑다고 여기는 사람에게 들려줄 곡을 하나만 고르라면 이것이다. 아홉 분 넘게 화음이 천천히 돈다. 밴드가 남긴 것 중에 가장 따뜻한 축에 든다. "Movements of a Visionary" 는 제일 분주하다. 셋이 한꺼번에 달려들고, 시퀀서가 정말로 서두르는 것처럼 들린다. "Sequent C'" 는 바우만 혼자 만든 이 분짜리다. 오르간 위에 플루트 같은 선 하나가 얹히고, 누가 조용히 방을 나가듯 음반이 닫힌다.

그다음에 일어난 일

1980년대의 어두운 무대 위 탠저린 드림. 장비 벽 앞의 세 사람, 에뮬레이터 II 가 보인다
1980년대의 어느 무대. 세 사람, 세 개의 장비 벽, 그리고 Phaedra 가 열어 준 방을 가득 채우는 시퀀서 선들. 그때쯤 무그는 디지털 장비에 자리를 내줬지만 음악의 골격은 그대로였다.

이 앨범은 영국에서 15위까지 올랐다. 싱글도 없고 라디오도 안 틀어 주는 독일산 연주곡 음반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작은 기적이다. 그 돈이 이후 십 년을 먹여 살렸다. 더 중요한 건 지도를 그렸다는 점이다. 뒤에 나온 긴 호흡의 시퀀서 곡들, 한 해 뒤 슐체의 Timewind, 두 해 뒤 자르의 Oxygène, 나중에 베를린 스쿨이라 불리게 되는 것 전부가 같은 설계도를 쓴다. 드론, 시퀀스, 필터, 두 번째 시퀀스, 하늘, 무너짐. 그들이 먼저 했고, 일부는 사고로 했고, 그 사고를 지우지 않을 만한 분별이 있었다.

어디서 구하나

Virgin/UMC 의 2019년 리마스터가 가질 만한 판이다. 1990년대 CD 는 소리가 얇다. 1974년 영국 초판이 수집가의 판인데 아직 값이 뛰지 않았다. 한 장만 산다면 LP 로 사라. 바이닐 한 면에 맞춰 섞은 음반이고, "Phaedra" 가 끝나고 판을 뒤집는 그 동작까지가 듣기다.

Phaedra 앨범 표지Amazon탠저린 드림 CD·LP 목록. 2019년 리마스터가 여기 있다.Phaedra 앨범 표지Discogs탠저린 드림 앨범 목록으로 바로 간다. 1974년 원반부터 모든 판이 있다. 깨끗한 영국 초판이면 20~40파운드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