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번트리 대성당 내부. 동쪽 끝에 걸린 태피스트리Photo: Diliff · Wikimedia Commons · CC BY-SA 3.0
Album · No. 6

Ricochet

표지에는 실황이라고 적혀 있지만 절반 넘게 스튜디오에서 다시 지었다. 1975년 가을 순회 테이프가 두 곡, 38분짜리 음반이 됐다.

짧게 말하면

1975년 10월 23일, 런던 남쪽 크로이던의 페어필드 홀. 그해 가을 영국 순회가 막바지에 이른 무렵, 탠저린 드림이 이곳에서 연주했다. 무대 옆에서는 4트랙 테이프가 돌았다. 멤버 세 사람의 장비에서 한 채널씩, 그리고 객석 쪽 마이크 하나. 사흘 뒤 테이프는 옥스퍼드셔의 시골집 더 매너로 옮겨졌고, 밴드는 11월 초까지 그곳에서 순회를 다시 지었다. 프랑케는 훗날 이 판이 처음으로 제대로 된 콘셉트를 갖고 만든 앨범이었다고 했다. 16트랙으로 작업할 수 있어서 오버더빙을 처음으로 제대로 다뤄 본 앨범이기도 했다고. 제목은 리코셰, 튕겨 나온 것이라는 뜻이다. 무대에서 튕겨 나가 스튜디오 벽에 맞고 돌아온 소리다.

이 음반의 음악사적 위치

Ricochet 앨범 표지. 바닷가 사구의 사진
Ricochet, Virgin V2044, 1975년. 표지 사진은 모니크 프뢰제. 보르도 근처 필라 사구의 바닷가에서 찍었다. Low-resolution scan for identification.

1975년은 이 밴드의 해였다. 3월에 나온 Rubycon 이 영국 10위까지 올랐고, 그 기세를 몰아 가을에는 프랑스와 영국을 돌았다. 9월에는 파리, 리옹, 보르도, 오를레앙, 랭스. 10월에는 영국에서 16번 공연했다. 코번트리 대성당에서 시작해 리버풀 대성당과 요크 민스터, 크로이던을 거쳐 브래드퍼드에서 끝났다. 한 해 전 랭스 공연 뒤 가톨릭 교회는 문을 닫았지만, 영국 성공회 성당들은 개의치 않았다.

슬리브에 적힌 건 한 줄뿐이다. 1975년 가을, 프랑스와 영국에서 실황 녹음. 날짜도 장소도 없다. 뒷면의 상당 부분이 10월 23일 크로이던 공연에서 왔다는 데는 자료들이 입을 모은다. 갈리는 것은 그날 무대가 얼마나 그대로 남았느냐다. 박스 세트 해설을 옮긴 자료는 뒷면 대부분을 크로이던 공연으로 보고, 팬 아카이브 Voices in the Net 은 무대 녹음이 10분쯤이고 나머지는 스튜디오에서 새로 지었다고 본다. 앞면은 더 매너에서 녹음했고, 첫머리의 신시사이저 선율은 크로이던 공연의 오프닝을 바탕으로 다시 연주했다. 믹스는 믹 글로솝이 맡았다.

녹음
1975년 가을 프랑스·영국 순회 실황 + 더 매너 스튜디오(10월 26일~11월 2일)
발매
1975년 12월, Virgin V2044
구성
에드가 프뢰제, 크리스토퍼 프랑케, 페터 바우만
믹스
믹 글로솝
차트
영국 40위, 4주
길이
38:04

버진 시절 세 장 가운데 마지막 판이다. Phaedra 가 시퀀서를 세우고 Rubycon 이 그것을 끝까지 밀어붙였다면, Ricochet 은 같은 방법을 무대로 들고 나가 무슨 일이 생기는지 지켜본 판이다. 생긴 일은 리듬이었다. 앞의 두 장보다 타악기와 기타가 많고, 뒷면의 시퀀서는 이 밴드가 록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대목이다. 1986년에 프랑케는 이 판이 아마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앨범일 거라고 했다. 무대에서 만드는 음악은 늘 다르게 나온다는 걸 보여 준 판이라서다.

트랙리스트

A Ricochet Part One · 프뢰제, 프랑케, 바우만 16:59
B Ricochet Part Two · 프뢰제, 프랑케, 바우만 21:05

곡은 둘. 앞면 17분, 뒷면 21분. 이번에는 두 면의 길이가 다르다. 뒷면이 4분 더 길고, 그 4분만큼 판의 무게가 뒷면으로 기운다. 판마다 표기된 시간이 조금씩 다른데, 여기 적은 것은 1995년 CD 기준이다.

"Ricochet Part One" 따라가며

앞면은 어둡게 시작한다. 낮은 신시사이저 소리가 방을 채운다. Phaedra 의 첫 2분을 아는 사람이라면 같은 안개를 알아볼 것이다. 그런데 곧 다른 것이 온다. 프랑케가 드럼을 친다. 이 밴드의 음반에서 사람 손으로 두드리는 타악기가 이만큼 앞에 나선 적은 없었다. 프뢰제의 일렉트릭 기타도 처음으로 한가운데 선다. 여기서는 시퀀서와 드럼이 서로 발을 맞추는지 들어 본다. 기계의 맥박 위에 사람의 박자가 얹히는 순간, 이 음악은 갑자기 밴드 소리가 된다. 멜로트론은 초반에 현악으로, 끝에서는 합창으로 나온다. 결국 앞면은 무대의 소리를 스튜디오 안에서 다시 지은 것이다. 크로이던 공연을 바탕으로 한 것은 첫머리 선율 하나뿐이다.

"Ricochet Part Two" 21분

무그 모듈러의 960 시퀀서 모듈. 손잡이가 줄지어 있다
무그 960 시퀀서. 뒷면 한복판을 몰아가는 소리가 여기서 나온다. 무대 옆 4트랙 테이프에는 멤버마다 채널이 하나씩이었으니, 이 소리도 한 채널에 담겼다. Photo: Moog 960 Sequential Controller + 962 Sequential Switch by Moog_Modular_55_img1.jpg: . The original uploader was Kimi95 at Italian Wikipedia. derivative work: Clusternote, CC BY 3.0, via Wikimedia Commons. Resized from the original.

뒷면은 피아노로 시작한다. 프뢰제가 치는 내려가는 음형인데, 무대에서 친 피아노가 아니다. 더 매너에 있던 낡은 업라이트로 스튜디오에서 녹음했다. 그 위로 멜로트론 플루트가 여러 겹 얹힌다. 여기까지는 눈속임이다. 시퀀서가 들어오면 그때부터 21분짜리 곡이 한 방향으로 내달린다. 귀를 둘 곳은 시퀀스 자체보다, 그 위에서 음형을 조금씩 바꿔 가는 프랑케의 손이다. 무대에서는 밤마다 다르게 바뀌었고, 이 판에는 그중 하룻밤의 손길이 남았다. 한가운데에서 조성이 풀리는 짧은 막간이 곡을 앞뒤로 가른다. 마지막은 플루트와 합창 화음이다. 하나 더 있다. 원판에는 뒷면 첫머리에 박자를 잡아 주는 손뼉 소리가 있었다. 1995년 재발매판은 그 손뼉을 지웠다.

이렇게 들어라

그다음에 일어난 일

이 판은 영국에서 40위까지 올라 4주 동안 머물렀다. Rubycon 의 10위에 비하면 한참 낮다. 하지만 오래 남은 건 순위보다 방향이었다. 리듬이 앨범 한복판으로 들어왔고, 밴드는 그 길을 따라갔다. 이듬해 10월에 Stratosfear 가 나온다. 기타와 하모니카, 그랜드 피아노, 따라 흥얼거릴 수 있는 선율이 담긴 판이다. 시퀀서만으로 음반을 짓던 시절은 거기서 끝난다. Ricochet 은 그 문턱에 선 판이다. 시퀀서만의 시절을 닫는 마지막 장이자, 밴드가 밴드처럼 들리기 시작한 첫 장이다.

친구에게 보낼 한 곡

"Ricochet Part Two" 를 보낸다. 피아노로 문을 여니 누구든 부담 없이 들어올 수 있고, 시퀀서가 들어오고 나면 왜 이 밴드를 좋아하는지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한마디 덧붙인다. 이 실황 앨범에서 처음 들리는 피아노는 무대에 없었다. 시골집에 있던 낡은 업라이트다.

어디서 구하나

2019년 In Search of Hades 박스에 든 판이 가질 만한 판이다. 벤 와이즈먼이 리마스터했고, 스티븐 윌슨이 1세대 마스터에서 새로 만든 스테레오 믹스가 따로 든다. 1995년 Virgin "Definitive Edition" 은 사이먼 헤이워스 리마스터로 오래 표준이었다. 다만 그 판은 뒷면 첫머리의 손뼉을 지웠다. 손뼉이 있는 원래 모양을 들으려면 1975년 LP 로 가야 한다.

Ricochet 앨범 표지Ricochet · Amazon새 CD·LP 검색 결과.Ricochet 앨범 표지Ricochet · Discogs발매된 모든 판과 중고 매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