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게 말하면
- 1975년 가을, 프랑스와 영국을 돈 순회에서 나온 판. 그해 12월 영국 차트에 들었다.
- 표지에는 실황이라 적혀 있다. 실제로는 순회 테이프를 스튜디오로 가져가 잘라 붙이고 덧입혔다. 얼마나 남겼는지는 자료마다 다르다.
- 곡은 둘. 뒷면이 이 밴드가 록에 가장 가까이 간 스물한 분이다.
- 피아노로 시작하는 뒷면의 그 피아노는 무대가 아니라 스튜디오의 낡은 업라이트다.
1975년 10월 23일, 런던 남쪽 크로이던의 페어필드 홀. 탠저린 드림이 그해 가을 영국 순회의 끝자락에서 연주했다. 무대 옆에서는 네 트랙 테이프가 돌았다. 멤버 셋의 장비에서 한 채널씩, 그리고 관객 쪽 마이크 하나. 사흘 뒤 그 테이프들은 옥스퍼드셔의 시골집 더 매너로 갔고, 밴드는 11월 초까지 거기서 순회를 다시 지었다. 프랑케가 뒷날 말했다. 이 판이 자기들이 처음으로 개념을 갖고 만든 앨범이고, 열여섯 트랙이 있어서 처음으로 오버더브라는 기술을 제대로 만진 앨범이라고. 제목이 리코셰다. 튕겨 나온 것. 무대에서 튕겨 스튜디오 벽에 맞고 돌아온 소리다.
이 음반의 음악사적 위치

1975년은 이 밴드의 해였다. 3월에 Rubycon 이 나와 영국 10위까지 갔다. 그 여세로 가을에 프랑스와 영국을 돌았다. 9월에 파리, 리옹, 보르도, 오를레앙, 랭스. 10월에 영국 열여섯 번. 코번트리 대성당에서 시작해 리버풀 대성당과 요크 민스터를 지나 크로이던을 거쳐 브래드퍼드에서 끝났다. 한 해 전 랭스에서 가톨릭 교회가 문을 닫았지만 영국 성공회의 성당들은 개의치 않았다.
슬리브에 적힌 것은 한 줄이다. 1975년 가을 프랑스와 영국에서 실황 녹음. 어느 날 어느 곳인지는 없다. 뒷면의 상당 부분이 크로이던 10월 23일의 것이라는 데는 자료가 모인다. 다만 얼마만큼이 그날 무대 그대로인지는 갈린다. 박스 세트 해설을 옮긴 자료는 뒷면 대부분이 크로이던이라 하고, 팬 아카이브 Voices in the Net 은 무대 것은 십 분쯤이고 나머지는 스튜디오에서 새로 지었다고 한다. 앞면은 더 매너에서 녹음했고, 여는 신시사이저 선은 크로이던 공연의 오프닝을 바탕으로 다시 쳤다. 믹스는 믹 글로솝.
- 녹음
- 1975년 가을 프랑스·영국 순회 실황 + 더 매너 스튜디오(10월 26일~11월 2일)
- 발매
- 1975년 12월, Virgin V2044
- 구성
- 에드가 프뢰제, 크리스토퍼 프랑케, 페터 바우만
- 믹스
- 믹 글로솝
- 차트
- 영국 40위, 4주
- 길이
- 38:04
버진 시절 세 장의 마지막이다. Phaedra 가 시퀀서를 세웠고 Rubycon 이 그것을 끝까지 밀었다면, Ricochet 은 같은 방법을 무대로 끌고 나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본 판이다. 벌어진 일은 리듬이다. 앞의 두 장보다 타악기와 기타가 많고, 뒷면의 시퀀서는 이 밴드가 록에 가장 가까이 간 자리다. 프랑케는 1986년에 이 판이 아마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앨범일 거라고 했다. 자기들이 무대에서 음악을 만들면 늘 다르다는 것을 증명한 판이라서.
트랙리스트
| A | Ricochet Part One · 프뢰제, 프랑케, 바우만 | 16:59 |
| B | Ricochet Part Two · 프뢰제, 프랑케, 바우만 | 21:05 |
곡은 둘. 앞면 열일곱 분, 뒷면 스물한 분. 이번에는 길이가 다르다. 뒷면이 네 분 길고, 그 네 분이 이 판의 무게를 뒷면으로 옮긴다. 판마다 표기 시간이 조금씩 다른데, 1995년 CD 기준이다.
"Ricochet Part One", 따라가며
앞면은 어둡게 시작한다. 낮은 신시사이저 선이 방을 채우고, Phaedra 의 첫 이 분을 아는 사람이면 같은 안개를 알아본다. 다른 것이 곧 온다. 프랑케가 드럼을 친다. 이 밴드의 판에서 사람이 두드리는 타악기가 이렇게 앞에 나온 적이 없었다. 그리고 프뢰제의 일렉 기타가 처음으로 정면에 선다. 들을 것은 시퀀서와 드럼이 서로 발을 맞추는가다. 기계의 맥박 위에 사람의 박자가 얹히면 이 음악은 갑자기 밴드 소리가 된다. 멜로트론은 앞에서 현으로, 끝에서 합창으로 나온다. 앞면은 그렇게 무대 위의 소리를 스튜디오 안에서 다시 지은 것이다. 여는 선 하나만 크로이던의 그것을 바탕으로 했다.
"Ricochet Part Two", 스물한 분

뒷면은 피아노로 시작한다. 프뢰제가 치는 내려오는 음형이고, 무대 피아노가 아니다. 더 매너에 있던 낡은 업라이트로 스튜디오에서 녹음했다. 그 위에 멜로트론 플루트가 겹으로 얹힌다. 여기까지가 눈속임이다. 시퀀서가 들어오면 그때부터 스물한 분이 한 방향으로 달린다. 들을 것은 시퀀스가 아니라 그 위에서 프랑케가 음형을 조금씩 바꾸는 손이다. 무대에서는 매일 밤 다르게 바뀌었고, 이 판에 남은 것은 그중 한 밤의 손이다. 중간에 조성이 풀리는 짧은 막간이 앞뒤를 가른다. 끝은 플루트와 합창 화음이다. 한 가지 더. 원판에는 뒷면 첫머리에 박자를 잡아 주는 손뼉 소리가 있었다. 1995년 재발매에서 지웠다.
이렇게 들어라
- 뒷면부터 들어도 된다. 이 판은 그래도 되는 유일한 버진 시절 앨범이다. 다만 앞면을 건너뛰면 뒷면의 드럼이 왜 충격인지 모른다.
- 헤드폰으로, 밤에. 관객 마이크 한 채널에 담긴 방의 울림이 낮에는 사라진다.
- 이 판을 배경음악으로 여기는 사람 옆에서 튼다. 시퀀서가 몰아가는 대목에서 그 사람이 고개를 든다.
그다음에 일어난 일
이 판은 영국에서 40위까지 갔고 4주 머물렀다. Rubycon 의 10위에서 한참 내려온 자리다. 그런데 오래 남은 것은 순위가 아니라 방향이다. 리듬이 앨범 한복판에 들어왔고, 밴드는 그 길로 갔다. 이듬해 10월 Stratosfear 가 나온다. 기타, 하모니카, 그랜드 피아노, 흥얼거릴 수 있는 선율. 시퀀서만으로 짓던 시절은 여기서 끝난다. Ricochet 은 그 문턱에 놓인 판이다. 순수한 시퀀서 시절의 마지막 장이면서, 밴드가 밴드처럼 들리기 시작한 첫 장.
친구에게 보낼 한 곡
"Ricochet Part Two" 를 보낸다. 피아노로 열려서 누구나 들어올 수 있고, 시퀀서가 들어오면 그 사람이 왜 이 밴드를 좋아하는지 설명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리고 한마디를 붙인다. 이 실황 앨범의 첫 소리인 피아노는 무대 위에 없었다. 시골집의 낡은 업라이트다.
어디서 구하나
2019년 In Search of Hades 박스에 든 판이 가질 만한 판이다. 벤 와이즈먼이 리마스터했고, 스티븐 윌슨이 1세대 마스터에서 새로 만든 스테레오 믹스가 따로 든다. 1995년 Virgin "Definitive Edition" 은 사이먼 헤이워스 리마스터로 오래 표준이었다. 다만 그 판은 뒷면 첫머리의 손뼉을 지웠다. 손뼉이 있는 원래 모양을 들으려면 1975년 LP 로 가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