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게 말하면
- 1975년 3월, 버진에서 낸 두 번째 장. Phaedra 를 만든 세 사람이 같은 시골집으로 돌아가 1월 한 달 동안 녹음했다.
- 곡은 둘. 판 한 면에 한 곡씩, 각각 17분이다. 이번에는 더듬거리지 않는다.
- 그 집은 전기가 자주 끊겼다. 발전기를 끌어다 썼고, 무그는 제멋대로 음을 냈다.
- 영국 차트 10위. 이 밴드가 영국에서 오른 가장 높은 자리다.
1975년 1월, 세 사람이 옥스퍼드셔의 시골집 더 매너로 다시 들어갔다. 13개월 전 이 집에서 Phaedra 를 만든 사람들이다. 그때는 무엇이 나올지 아무도 몰랐지만, 이번에는 알았다. 프뢰제는 훗날 Phaedra 때와 달리 작업 흐름이 한 번도 끊기지 않았다고 돌아봤다. 끊긴 것은 전기였다. 정전이 잦아 녹음을 멈추고 신시사이저를 발전기에 연결해야 했다. 전류가 불안정하다 보니 프랑케의 무그는 가끔 아무도 시키지 않은 시퀀스를 혼자 연주했다. 한 해 전에는 추위가 사고를 쳤고, 이번에는 전기가 사고를 쳤다. 이번에도 그들은 그 사고 위에 음반을 지었다.
이 음반의 음악사적 위치

Phaedra 는 1974년 2월에 나와 영국 15위까지 올랐다. 싱글도 없고 라디오도 안 틀어 주는 독일 밴드의 연주곡 음반이 그만큼 팔렸다. 프뢰제에 따르면 그 돈은 거의 전부 새 장비에 들어갔다. 시퀀서를 더 잘 갖출 수 있게 됐지만, 손볼 부분은 대부분 주문 제작해야 했다. 멜로트론에 넣을 관현악 소리는 BBC 에 맡겨 녹음했다. 프랑케는 개조한 엘카 오르간을, 바우만은 프리페어드 피아노와 ARP 를 들였다. Phaedra 로 번 돈을 Phaedra 를 제대로 다시 만드는 데 쓴 셈이다.
녹음은 1975년 1월, 같은 집 같은 스튜디오에서 했다. 엔지니어는 믹 글로솝. 판은 3월 21일에 나왔다.
- 녹음
- 1975년 1월, 옥스퍼드셔 십턴온처웰 더 매너
- 발매
- 1975년 3월 21일, Virgin V2025
- 구성
- 에드가 프뢰제, 크리스토퍼 프랑케, 페터 바우만
- 악기
- 더블 무그 모듈러, 멜로트론, VCS 3 와 Synthi A, ARP 2600, 개조한 엘카 오르간, 전기 피아노, 프리페어드 피아노, 기타, 징
- 차트
- 영국 10위, 14주
- 길이
- 34:53
버진 시절 세 장 가운데 한가운데 놓인 판이다. 앞에는 Phaedra, 뒤에는 그해 12월에 나온 실황 Ricochet 이 있다. 셋을 나란히 놓으면 이 판의 자리가 보인다. Phaedra 가 처음으로 시퀀서를 음악 한복판에 세웠고, Ricochet 은 그 시퀀서를 무대로 끌고 나가 록에 가장 가까이 갔다. 그 사이의 Rubycon 은 스튜디오 안에서 같은 세 사람이 같은 방법을 끝까지 밀어붙인 판이다. 폴 스텀프는 Digital Gothic 에서 이 판이 전작을 다듬어 정점에 올렸다고 평했고, 이 밴드가 만든 가장 좋은 앨범일지도 모른다고 썼다. 오랜 팬 가운데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많다.
트랙리스트
| A | Rubycon Part One · 프뢰제, 프랑케, 바우만 | 17:18 |
| B | Rubycon Part Two · 프뢰제, 프랑케, 바우만 | 17:35 |
곡은 둘뿐이다. 한 면에 한 곡, 길이도 거의 같다. Phaedra 가 뒷면에 짧은 곡 셋을 두어 숨을 돌리게 했다면, 이 판은 그 숨구멍마저 막았다. 판을 뒤집을 때 말고는 쉴 틈이 없다. 제목은 루비콘강에서 왔다. 카이사르가 건넌 뒤로 되돌아갈 수 없었던 그 강이다. 한 해 전 시퀀서를 들고 강가까지 왔던 밴드가 이번에는 강을 건넌다.
"Rubycon Part One" 17분 18초를 따라가며
"Rubycon Part Two" 17분 35초
뒷면은 앞면이 끝난 곳에서 몇 해리쯤 더 나아간 바다에서 시작한다. 징이 다시 울리고, VCS 3 가 공습 사이렌처럼 밤바다 위를 훑고 지나간다. 이어 합창이 들어온다. 멜로트론 테이프에 담긴 사람 목소리다. 1975년 NME 는 이 대목에서 스피커 밖으로 쏟아지는 소리를 기술이 빚은 대합창이라고 표현했다. 리게티의 합창곡이 떠오른다는 사람이 많은데, 그럴 만하다. 시퀀스는 앞면보다 이른 4분쯤에 들어온다. 그 뒤로 거꾸로 돌린 기타와 오르간이 스치고, 이펙트를 먹인 징이 파도처럼 부서진다. 끝은 오르간과 신시사이저가 속삭이듯 잦아드는 에필로그다. 강을 건넌 뒤의 풍경이다.
그해 순회 공연 프로그램에서 프랑케는 자기들 음악을 한 낱말로 요약했다. 액체. 한 점에서 다음 점으로 흘러가고, 크게 끊기는 데가 없는 물 같은 음악이라고 했다. 가끔 폭포를 만나도 멈추지는 않는다고. 표지의 물방울, 뒷면의 밤바다, 파도처럼 부서지는 징. 이 판은 35분 내내 그 말대로 흐른다.

이렇게 들어라
- 헤드폰으로, 밤에. 뒷면의 사이렌과 합창은 낮에는 반쯤만 들린다.
- 앞면을 끊지 않는다. 시퀀스가 7분이 지나도록 안 나온다고 건너뛰면, 이 판에서 가장 큰 결정을 놓친다.
- 틀어 놓고 다른 일을 한다. 걸어도 좋고 밤길을 운전해도 좋다. 귀를 곤두세우고 듣는 음악이 아니다.
- 나는 10대 때 이런 음악을 라디오에서 우연히 처음 들었다. 뭔가 이상하게 끌렸는데, 흔히 들을 수 있는 음악이 아니어서 한참 뒤에야 제대로 찾아 들었다. 그렇게 찾아온 사람에게 Rubycon 은 가장 먼저 답을 주는 판이다.
그다음에 일어난 일
이 판은 영국에서 10위까지 올랐다. Phaedra 보다 다섯 계단 높고, 이 밴드가 영국에서 오른 가장 높은 순위다. 같은 해 12월에는 유럽 순회 실황을 이어 붙인 Ricochet 이 나온다. 앞의 두 장보다 타악기와 기타가 많아 록에 가깝다. 결국 Rubycon 은 이 방법이 스튜디오 안에서 갈 수 있는 데까지 간 판이다. 그 뒤 밴드는 무대로 나갔고, 이어 선율과 영화음악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 자리로 다시 돌아오지는 않았다.
친구에게 보낼 한 곡
"Rubycon Part Two" 를 보낸다. 앞면보다 일찍 본론에 들어가고, 합창이 나오고, 끝맺음도 분명하다. 한마디 덧붙인다. 이 판은 전기가 자꾸 끊기는 영국 시골집에서 발전기를 돌려 가며 만들었고, 그때 무그가 가끔 혼자 연주했다. 그게 어느 대목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디서 구하나
2019년 In Search of Hades 박스에 든 리마스터가 가질 만한 판이다. 스티븐 윌슨이 믹스한 "Rubycon (extended introduction)" 이 덤으로 붙어 있다. 1995년 Virgin "Definitive Edition" 은 오래 표준이었고 지금도 흔하다. 2025년 11월에는 Cherry Red 에서 50주년판 5CD 가 나왔다. 1974년 레인보우와 1975년 로열 앨버트 홀 실황이 함께 든다. 한 장만 산다면 LP 다. 앞면이 끝나고 판을 뒤집는 그 동작이 이 판에는 곡의 일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