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12월 13일, 탠저린 드림이 랭스 대성당에서 연주했다. 육백 년 넘게 프랑스 왕들이 대관식을 올린 그 성당이다. 삼천 명을 예상했는데 육천 명이 넘게 왔다. 유럽의 대성당에서 열린 이런 종류의 첫 공연이었고, 앞무대는 니코가 열었다. 그리고 그날 밤이 끝날 무렵 교회는 이것이 마지막이어야 한다고 결정했다.
- 언제
- 1974년 12월 13일 금요일 저녁
- 어디
- 프랑스 샹파뉴, 랭스 노트르담 대성당
- 누가
- 에드가 프뢰제, 크리스토퍼 프랑케, 페터 바우만. 앞무대는 니코
- 숫자
- 예상 3,000명, 실제로 성당 안에 6,000명 이상
- 음원
- 테이프가 남았다. 2021년에 Live at Reims Cathedral 1974 로 정식 발매됐고, Official Bootleg Series 의 첫 장이다
- 그 뒤
- 교회는 이후 모든 대관을 거절했다. 성당 순회는 1975년 10월 영국으로 옮겨 갔다
왜 하필 성당이었나
하나는 울림이다. 드럼이 없고 멜로트론이 잔뜩 깔린 이십 분짜리 곡은 소리가 잦아드는 데 육 초가 걸리는 방을 원한다. 고딕 성당의 신랑이 정확히 그런 방이다.
또 하나는 기획자다. 그는 이 음악이 록 공연보다 전례에 가깝다는 것을 알았고, 그렇게 팔았다.
나머지 하나는 프뢰제다. 화가로 훈련받은 사람이라 그림이 어떻게 나올지 알고 있었다. 세 사람, 나무 판을 두른 기계들의 벽, 그 뒤로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견딘 장미창. 이 음악이 늘 성스러움과 묶여 온 것은 그날 밤의 사진들 때문이다. 첫 앨범 표지에 불타는 피아노를 올렸던 밴드치고는 이상한 일이다.

무엇이 잘못됐나
사람이 너무 많았고 화장실이 없었다. 이 성당에는 일반이 쓸 화장실이 없다. 문은 찾아온 사람 모두에게 열렸고, 공연은 늦게까지 이어졌다. 나머지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그대로다.
나중에 성직자들이 문제 삼은 것은 음악이 아니라 신도석이었다. 입맞춤, 대마초, 그리고 공연장처럼 쓰인 건물.
반응은 두 갈래로 왔다. 작은 쪽은 반종교개혁 성향의 소책자였다. "역사적이고 존엄한 이 자리를 더럽힌 자들" 을 규탄하며 로마에 재축성을 요구했다. 그것은 변방의 유인물이지 바티칸의 결정이 아니었고, 거기서 요구한 재축성은 이 이야기에서 가장 자주 실제로 일어난 일처럼 옮겨지는 대목이다.
실제로 일어난 것은 금지다. 유럽 각지의 교회 당국에 탠저린 드림을 가톨릭 건물에서 다시 연주하게 하지 말라는 지침이 내려갔고, 그들은 다시는 연주하지 않았다.
무엇이 달라졌나
셋이다.
탠저린 드림이 무대에 서는 밴드가 됐다. 그전까지는 사실 아니었다. 이듬해 10월의 영국 순회는 열두 번의 공연이었고 코번트리 대성당, 리버풀 대성당, 요크 민스터가 거기 들어 있었다. 그 가을에서 추려 낸 Ricochet 이 이 시기 최고의 실황 앨범이다.
그림이 굳어졌다. 기계와 스테인드글라스. 이후 베를린 스쿨의 모든 이름이 이 그림을 빌려 썼다.
그리고 프랑스 음악 언론의 첫 장에 밴드가 올랐다. 같은 계절에 장 미셸 자르라는 젊은 프랑스 사람이 자기 첫 음반을 만들고 있었다. 두 해 뒤에 나온 것이 Oxygène 이다.

1974년 12월, 같은 달에
- 클라우스 슐체의 Picture Music 이 나올 채비를 마쳤다. 해가 바뀌면 Brain 에서 나온다. 언제 녹음한 것인지는 자료마다 갈린다. 1973년이라는 쪽과 1974년 늦게라는 쪽이 있고, 속지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 크라프트베르크의 Autobahn 이 미국 차트로 올라가는 중이다. 몇 달 동안 "독일 전자음악" 이라는 말이 뉴욕에서 뜻을 갖는다.
- Phaedra 는 봄부터 영국에서 팔리고 있었다. 독일 밴드가 프랑스 대성당을 채울 수 있었던 이유가 그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