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게 말하면
- 슐체의 공식 사이트에 1988년 독일어 인터뷰가 실려 있다. 옛 시절을 길게 이야기한 자리다.
- 그는 탠저린 드림에서 북만 치는 일에 지쳐 나왔다고 말했다. 에센 축제에서 테이프를 돌렸다가 들은 말이 계기였다.
- 후임 크리스 프랑케도 반년 뒤 북을 그만두고 시퀀서를 다루기 시작했다.
- 첫 판에 그의 이름은 Claus Schultze 로, 생일도 틀리게 적혀 나갔다. 음반이 나온 뒤에야 알았다.
밴드에 들어간 경위부터 사람 하나가 빠지는 일로 시작했다. 어느 저녁, 드러머가 자리를 비웠다. 매직 케이브라는 이름의 클럽이었다. 에드가 프뢰제가 와서 물었다. 하루만 도와줄 수 있겠느냐고. 50마르크를 주겠다는 말이 붙었다. 그때까지 공연 한 번에 받아 본 가장 큰 액수였다고 슐체는 1988년에 말했다. 그날 연주가 잘 풀렸고 프뢰제가 말했다. 계속 같이 하자고. 그렇게 그는 탠저린 드림의 사람이 됐다.
그 말이 나온 자리

공식 사이트는 이 인터뷰를 1988년의 독일어 대화로 싣는다. 누가 물었는지, 어느 매체에 처음 실렸는지는 적혀 있지 않다. 찾아서 옮겨 적고 번역했다는 한 줄이 붙어 있을 뿐이다. 슐체는 그해 8월에 41세가 됐다.
그가 돌아본 시작은 교사가 되려던 학생 시절이다. 독문학을 공부해야 했고 심리학과 철학도 조금 들어야 했다. 음악은 제대로 배우지 않았다고 그는 분명히 말한다. 블라허나 리게티가 시내에 올 때 실험 작곡 강의를 가끔 들었을 뿐이고, 음악을 진지하게 공부했다는 말은 거절하겠다고 했다.
북만 치라는 말
밴드에서 나온 이유를 그는 길게 돌리지 않았다. 그 시절 탠저린 드림은 실험을 많이 했지만 방향 없이 했다는 것이다. 집에는 작은 전기 오르간과 작은 녹음기가 있었고 그는 테이프를 거꾸로 돌리거나 메아리를 거는 일을 혼자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프뢰제가 원한 것은 하나였다. 너는 북만 치고 나는 기타를 친다는 것이다.
에센 송 페스티벌에서 그는 거꾸로 돌린 오르간 소리가 든 테이프를 틀었다. 프뢰제가 다가와 말했다. 다시는 이러지 않을 거지, 이건 말이 안 된다고. 슐체는 답했다. 북만 치는 것에 지쳤다고.
그 뒤가 이 이야기의 뒷부분이다. 프뢰제는 아지테이션 프리에 있던 크리스 프랑케를 데려왔다. 똑같은 일이 그에게도 일어났다. 프랑케는 반년 동안 북을 치다가 더는 북을 치지 않겠다고 말하고 시퀀서를 다루기 시작했다. 그러자 프뢰제가 포기했다고 슐체는 말한다. Cyclone 때는 드러머를 따로 구했고, 그 사람이 클라우스 크리거다. 크리거는 뒤에 슐체의 IC 레이블에서 솔로 음반 두 장을 냈다.
이름이 틀린 첫 판
Electronic Meditation 이야기도 그 자리에 있다. 녹음은 베를린 크로이츠베르크 파울링케우퍼의 작은 개인 스튜디오에서 했다. 사실은 레복스 녹음기 한 대였다고 그는 적는다. 두세 시간 연주한 것이 그 판이 됐다.
그가 밴드를 떠난 직후 Ohr 레이블이 그 녹음을 음반으로 내기로 했고, 그때 그는 이미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음반에 적힌 그의 이름은 틀렸다. Claus Schultze, 끝이 다른 철자다. 생일도 틀리게 적혔다. 우리 녹음으로 음반이 하나 나와 있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그 모두를 보았다고 그는 말한다.
표지에 적힌 거창한 콘셉트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그가 보기에 그것은 홍보용 글이었다. 연주할 때는 그런 것을 생각하지 않았고, 나중에 붙인 것이라는 말이다. 독문학을 조금 공부하면서 괴테 시 한 편에 대한 해석 쉰 가지를 읽어야 했다는 이야기가 그 뒤에 붙는다. 그는 이 판을 최초의 전자 펑크 음반이라고 불렀다.
기계가 비싸던 시절
무그를 몰라서 안 쓴 것이 아니다. 살 돈이 없었다고 그는 말한다. 플로리안 프리케는 아주 일찍부터 그 큰 무그를 갖고 있었다. 그래서 남은 길은 전기 오르간을 손보거나 앰프를 가지고 노는 것이었다. 조금 덜 비싼 EMS 의 작은 상자가 나오자 다들 그것으로 시작했다.
독일에도 만드는 사람들이 있었다. PPG 의 볼프강 팔름, 그리고 마텐 운트 비허스다. 음악가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서 특별히 만들어 줬다고 그는 말한다. 업계는 아직 관심이 없었고 우리가 뭘 하는지 몰랐으니 맞는 물건을 내놓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의 첫 시퀀서는 마텐 운트 비허스가 만들어 준 것이다. 탠저린 드림은 운이 좋아 베를린 한자 스튜디오에서 큰 모듈러 무그를 싸게 얻었다. 그리고 그는 1975년 12월에 프리케에게서 빅 무그를 샀다. Moondawn 의 그 무그다.
프랑스에서 그랑프리를 받고도 제대로 된 신시사이저는 살 수 없었다고 그는 덧붙인다. 여전히 너무 비쌌다는 것이다.
혼자가 아니었던 쪽
애쉬 라 템펠 이야기에서 그의 말투가 달라진다. 뉴에이지보다 스페이스 록이 맞는 말이라고 그는 말한다. 호크윈드 같은 것, 기타와 베이스와 드럼이 있고 그가 오르간도 치는 편성이다. 핵심은 음악이 날아올라야 한다는 것이었고, 그 무렵 세 사람은 핑크 플로이드의 영향 아래 있었다고 그는 인정한다.
두 밴드의 지향은 같았다. 새로운 것을 찾는 일이다. 다만 애쉬 라 템펠 쪽이 사람으로서 더 가까웠다고 그는 말한다. 셋이 함께 클럽에 가고 많이 이야기했다. 마누엘은 조금 거리를 두는 편이었다. 그래도 셋 사이가 좋았고 그것이 음악에 드러났다는 것이다. 첫 판에는 방향이 있었다고, Electronic Meditation 에는 방향이 없었다고 그는 견준다.
어디서 구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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