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게 말하면
- 1982년 3월 29일, Chariots of Fire 가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던 시각에 반젤리스는 런던에서 자고 있었다. 그날이 그의 생일이었다.
- 그의 영화음악은 1970년대 프랑스 동물 다큐에 뿌리가 있다. 그때부터 영화 속에는 늘 판보다 많은 음악이 있었다.
- 석 달 뒤 개봉한 Blade Runner 는 반젤리스가 연주한 음악이 12년 뒤에야 판으로 나왔다. Missing 과 The Bounty 의 음악은 지금도 정식 음반이 없다.
- 반젤리스 자신은 가장 많이 팔린 Chariots of Fire 보다 The Bounty 가 훨씬 흥미로운 작업이었다고 했다.
1982년 3월 29일 밤 8시, 로스앤젤레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Chariots of Fire 가 음악상을 받았다. 받을 사람은 그 자리에 없었다. 런던은 새벽 4시였고, 반젤리스는 침대에서 자고 있었다. 그날 밤 늦게까지 서른아홉 번째 생일을 축하하고 잠든 참이었다. 로스앤젤레스의 친구가 전화를 걸어 소식을 알렸다. 그는 People 과의 인터뷰에서 그 순간을 이렇게 돌아봤다. 수화기 너머로 텔레비전 소리와 떠들썩한 파티 소리가 들렸고, 그 대단한 일이 벌어지는 동안 자기는 침대에 있었다고.
상을 받은 음악은 이미 1년 전에 나온 판이었다. 그리고 그 봄, 반젤리스는 런던의 자기 스튜디오에서 다음 영화 Blade Runner 에 매달려 있었다. 그 음악이 판으로 나오기까지는 12년이 걸린다.
동물 다큐에서 시작했다

반젤리스의 영화음악 이야기는 동물에서 시작한다. 프랑스 감독 프레데리크 로시프가 1973년 텔레비전에 내보낸 다큐 연작 L'Apocalypse des animaux 가 두 사람의 첫 작업이다. 음악은 그보다 앞선 1970년, 반젤리스가 아직 Aphrodite's Child 에 있을 때 녹음했다. 화면을 보지 않고 동물이라는 주제만 듣고 곡을 여럿 만들어 넘겼고, 편집자들이 필요한 곳에 잘라 붙였다. 영문 위키백과는 다큐에 흐르는 음악이 판에 실린 것보다 훨씬 많다고 적고, 한마디를 덧붙인다. 반젤리스 영화음악에서 되풀이되는 일이라고. 이 글은 그 한마디를 따라간다.
로시프와의 일은 이어졌다. 1975년 La Fête sauvage, 1979년 Opéra sauvage. La Fête sauvage 역시 다큐 속 음악이 판보다 많다. Opéra sauvage 는 미국 빌보드 앨범 차트 42위까지 올라 39주를 머물렀다. 반젤리스가 미국에서 두 번째로 많이 판 음반이다.
그 사이에 놓친 영화도 하나 있다. 제작자 데이비드 퍼트넘은 1982년 American Film 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털어놨다. 1978년 Midnight Express 를 만들 때 반젤리스의 앨범을 모두 모아 그 음악에 맞춰 필름을 편집했다. 그런데 계약에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조르조 모로더를 찾아가 반젤리스의 음악을 입힌 편집본을 들려주었고, 모로더는 한 달쯤 걸려 자기 음악을 새로 썼다. 아카데미 음악상은 모로더에게 갔다. 몇 해 뒤 반젤리스에게 같은 상을 안긴 영화의 제작자도 퍼트넘이다.
- 무엇
- 반젤리스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맡은 영화·다큐 음악
- 1973년
- L'Apocalypse des animaux (로시프 다큐, 음악은 1970년 녹음)
- 1975년
- La Fête sauvage (로시프 다큐)
- 1979년
- Opéra sauvage (로시프 다큐 연작, 미국 42위)
- 1981년
- Chariots of Fire (휴 허드슨 감독, 1982년 아카데미 음악상)
- 1982년
- Missing (코스타가브라스 감독, 칸 황금종려상), Blade Runner (리들리 스콧 감독)
- 1983년
- Antarctica (구라하라 고레요시 감독)
- 1984년
- The Bounty (로저 도널드슨 감독)
불의 전차, 해변의 스피커
퍼트넘은 1980년 반젤리스와 Chariots of Fire 계약을 맺었다. People 에 따르면 반젤리스는 그때까지 큰 극영화 음악을 맡아 본 적이 없었다. 감독 휴 허드슨은 1970년대 파리에서 광고 일을 함께 한 적이 있었고, Opéra sauvage 와 China 를 듣고 반젤리스를 골랐다.

허드슨이 처음 원한 음악은 Opéra sauvage 의 "L'Enfant" 였다.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의 웨스트 샌즈에서 선수들이 해변을 달리는 첫 장면을 찍을 때, 촬영장 스피커에서는 이 곡이 흘렀고 배우들은 그 박자에 맞춰 뛰었다. 반젤리스는 새 곡을 쓰게 해 달라고 허드슨을 설득했다. 그렇게 나온 곡이 앨범에 "Titles" 로 실린, 세상이 "Chariots of Fire" 라고 부르는 그 곡이다. 영문 위키백과에 따르면 반젤리스는 "L'Enfant" 와 같은 빠르기로 이 곡을 썼다. "L'Enfant" 는 영화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선수들이 파리 경기장에 들어설 때 브라스 밴드가 이 곡을 연주하며 지나간다.
판과 영화는 처음부터 달랐다. 앨범은 거의 전부 다시 녹음한 것이라, 영화에서 들리는 소리와 다르고 편곡이 더 풍성하다. 반젤리스는 1981년 8월 잡지 Neumusik 에 음반은 영화와 다른 것이라서 바꿀 곳이 생긴다고 말했다. 영화에 나온 주제 몇 개는 판에 없다. 스코틀랜드 고지대에서 에릭 리들이 달리는 장면의 음악 "Hymne" 도 그렇다. 이 곡은 Opéra sauvage 에 있던 곡을 영화에 맞게 다시 편곡한 것이다.
판은 빨랐다. 영화가 런던에서 첫선을 보인 것이 1981년 3월 30일이고, 앨범은 4월 18일 영국 앨범 차트에 들어가 5위까지 올랐다. 미국에서는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4주 지켰고, 타이틀곡 싱글은 1982년 5월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한 주 올랐다. 반젤리스는 이 음악을 단거리 선수였던 아버지에게 바쳤다.
오스카의 봄, 이미 다음 영화에 있었다
오스카 무렵 반젤리스의 스튜디오를 지나간 영화가 둘 있다. 하나는 코스타가브라스 감독의 Missing, 칠레 쿠데타 뒤 사라진 미국 기자를 다룬 영화다. People 의 1982년 4월 기사는 그가 런던 스튜디오에서 이 영화의 음악을 만들었다고 적었다. 영화는 그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피아노 주제는 광고에 숱하게 쓰였지만, 영화음악 앨범은 한 번도 정식으로 나오지 않았다. 주제곡은 1989년 모음집 Themes 에 처음 실렸다.
다른 하나가 Blade Runner 다. 1982년 5월 Rolling Stone 의 커트 로더는 반젤리스가 이 영화 음악에 한창 매달려 있다고 전했다. 같은 인터뷰에서 반젤리스는 이런 말을 했다. 스튜디오에 믿기 어려울 만큼 많은 음악이 있는데 내놓을 수 없다, 한 해에 앨범을 열 장씩 낼 수는 없지 않으냐, 5년이나 10년을 기다려야 한다고. 그가 염두에 둔 것은 Beaubourg 같은 실험적인 음반이었지만, 그 말은 그때 만들던 영화음악에 더 정확히 들어맞았다.

영화는 1982년 6월 25일 미국 극장에 걸렸다. 반젤리스의 음악은 판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해 나온 첫 음반은 뉴 아메리칸 오케스트라가 반젤리스의 곡을 관현악으로 다시 연주한 것이었고, 반젤리스도 스콧 감독도 이 판을 인정하지 않았다. 영문 위키백과에 따르면 1982년에 이미 영화 믹싱 도중 흘러나온 것으로 보이는 테이프가 SF 팬 모임에서 돌았다. 1993년에는 해적판 CD 가 나왔다. 정식 판보다 곡이 더 많았다.
정식 음반은 1994년에 나왔다. 반젤리스는 책자에 1982년 런던에서 녹음한 음악을 그때는 내놓을 수 없었다고 짧게 적었다. 그 판에도 영화의 음악이 다 실리지는 않았다. 영화에 쓰이지 않은 곡이 들어가고, 영화에 나온 곡 몇몇이 빠졌다. 그래도 판은 영국 앨범 차트 20위에 올랐다. 2007년 25주년 기념 세 장짜리 판이 미발표 음악을 더 보탰지만, 영화에서 들리는데 판에는 없는 음악은 여전히 남아 있다.
판이 된 것, 되지 못한 것
1983년의 Antarctica 는 반대쪽 끝에 있다. 1958년 일본 남극 관측대가 남겨 두고 온 썰매개들의 이야기를 구라하라 고레요시가 찍었다. 영화는 일본에서 크게 성공해, 1997년 미야자키 하야오의 모노노케 히메 가 넘어서기까지 14년 동안 일본 영화 흥행 기록을 지켰다. 음악은 반젤리스가 런던 스튜디오에서 만들었고, 같은 해 Antarctica 라는 이름의 음반으로 세계에 나왔다.
1984년 5월 개봉한 The Bounty 는 그러지 못했다. 바운티호 반란을 다룬 영화로, 멜 깁슨과 앤서니 홉킨스가 나왔다. 반젤리스가 음악을 맡았지만 정식 음반은 지금까지 없다. 1995년에 두 장짜리 해적판이 나왔고, 여는 음악과 닫는 음악만 1989년 Themes 에 새로 녹음해 실었다.
반젤리스가 Chariots of Fire 보다 높이 친 것이 이 음악이다. 1991년 네덜란드 신문 De Telegraaf 인터뷰에서 그는 가장 성공한 작품을 최고작으로 꼽는 작곡가는 드물고 자기도 예외가 아니라며, The Bounty 음악이 Chariots of Fire 보다 훨씬 흥미롭다고 말했다. 돛단배 시대를 그린 영화에 신시사이저를 쓴다는 발상이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제작진은 바운티호 시절에 신시사이저가 없었다는 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반젤리스는 모험가들 사이에 있다고 생각하고, 필름을 한 뼘도 보지 않은 채 일을 맡았다.
Chariots of Fire 는 1997년 Titanic 이 나오기 전까지 가장 많이 팔린 연주곡 영화음악 음반이었다. 그리고 반젤리스가 더 아낀 음악은 극장 안에 남았다.
이렇게 들어라
- "L'Enfant" 와 "Titles" 를 이어서 듣는다. 해변의 배우들은 앞의 곡에 맞춰 달렸고, 관객은 뒤의 곡을 들었다.
- Blade Runner 는 1994년 판을 처음부터 끝까지 끊지 않고 튼다. 앞의 네 곡과 뒤의 다섯 곡이 각각 한 덩어리로 이어진다.
- 영화를 다시 볼 기회가 있으면 판에 없는 음악에 귀를 둔다. Chariots of Fire 의 고지대 장면이 가장 찾기 쉽다.
친구에게 보낼 한 곡
"L'Enfant" 를 보낸다. Chariots of Fire 의 테마를 기대한 친구에게 한마디 덧붙인다. 영화 첫머리, 선수들이 해변을 달리는 장면은 이 곡에 맞춰 찍었다. 촬영장 스피커에서 흐른 것은 이 곡이었고, 관객이 극장에서 들은 것은 반젤리스가 나중에 같은 빠르기로 새로 쓴 곡이다.
어디서 구하나
Chariots of Fire 는 반젤리스가 직접 리마스터한 2006년 CD 가 있다. Blade Runner 는 1994년 판을 기본으로, 미발표 음악이 더 필요하면 2007년 세 장짜리 Blade Runner Trilogy 를 찾는다. Opéra sauvage 는 "L'Enfant" 와 "Hymne" 원곡이 실린 판이다. Missing 과 The Bounty 는 정식 음반이 없다. 해적판은 권하지 않는다. 반젤리스의 다른 음반을 어떤 순서로 들을지는 반젤리스 가이드에 적었다. 두 영화의 음악은 영화 안에서, 해변을 달리는 발소리처럼 화면과 함께 듣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