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방에 놓인 아날로그 신디사이저와 전선 뭉치Photo: choworks-dev(프롬프트) · 자체 생성물
Fifty years ago · No. 22

이런 음악들이 1970년대에 탄생된 배경

폐허를 물려받은 세대가 과거 없는 악기를 손에 넣었다. 이 음악이 하필 그때, 그 땅에서 태어난 사정을 짚는다.

짧게 말하면

1974년, 노래가 한 곡도 없는 독일 음반이 영국 차트 15위까지 올랐다. 그것은 바로 탠저린 드림의 Phaedra 였다. 이듬해에는 대서양 건너 라디오에서도 고속도로를 달리는 소리로 만든 독일 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크라프트베르크의 Autobahn 이다. 기타도 드럼도 앞에 나서지 않는 음악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답은 음악 자체보다 그 음악이 자란 땅에 있다.

물려받을 수 없는 두 유산

1970년에 스무 살이던 서독 청년을 떠올려 보자. 1950년 언저리에 태어나 무너진 도시에서 자랐고, 부모 세대가 전쟁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학교보다 침묵에서 먼저 배웠다. 1968년에는 그 침묵을 향해 거리로 나가 소리를 질렀다.

이 세대에게는 부를 노래가 없었다. 부모 세대에게는 슐라거가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달콤하게 웃는 유행가다. 그 웃음 뒤에 무엇이 가려져 있는지 아는 자식들은 따라 부를 수 없었다. 그렇다고 바다 건너온 록을 부르자니 남의 옷을 입는 꼴이었다. 영어로 블루스를 흉내 내는 순간, 자기 이야기는 시작도 못 하고 끝난다.

두 유산을 다 거절하면 빈손이 된다. 그리고 빈손인 사람만이 누구도 만져 본 적 없는 악기를 맨 처음부터 배울 각오를 한다.

과거가 없는 악기

그 빈손에 신디사이저가 들어왔다. 이 악기의 진짜 힘은 소리보다 내력, 정확히는 내력이 없다는 데 있었다. 기타에는 블루스가 배어 있고 피아노에는 100년 치 교본이 쌓여 있다. 신디사이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교본도, 스승도, 이렇게 쳐야 한다는 규칙도 없었다. 과거를 물려받기 싫었던 세대에게 과거가 없는 악기보다 나은 선물은 없었다.

씨앗은 이미 그 땅에 뿌려져 있었다. 쾰른의 방송국 스튜디오에서는 1950년대부터 작곡가들이 전자음으로 음악을 짓고 있었다. 젊은 음악가들 사이에서 슈토크하우젠이라는 이름은 일종의 허가증처럼 통했다. 소리를 맨 처음부터 지어내도 음악이 될 수 있다는 허가였다. 실제로 그 문하를 거쳐 밴드로 간 사람들도 있었다.

남은 걸림돌은 값이었다. 방송국 지하실을 통째로 차지하던 기계가 1970년 언저리부터 들고 다닐 만한 크기로 줄었다. 미니무그가 나왔고, 영국에서는 책상 위에 올려놓는 작은 신디사이저가 나왔다. 여전히 비쌌지만 밴드 하나가 빚을 내면 살 수 있는 값이었다. 대학 실험실의 도구가 그렇게 클럽 무대로 내려왔다.

서베를린이라는 온실

이 실험을 키운 온실은 장벽에 둘러싸인 서베를린이었다. 서베를린에 사는 남자는 병역을 면제받았다. 징집을 피하려는 청년들이 전국에서 몰려들었고, 도시에는 빈집과 싼 방이 널려 있었다. 돈은 없고 시간은 넘치는 젊은이들이 한 도시에 모였다.

그 무렵 이 도시에 조디악이라는 지하 공간이 문을 열었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흐릿한 곳이었고, 밤마다 소리 실험이 벌어졌다. 탠저린 드림과 클라우스 슐체도 이 언저리를 거쳐 갔다. 훗날 코스미셰 무지크, 곧 우주의 음악이라 불리게 될 소리는 이런 방에서 자랐다. 이 장르의 요람은 레코드 가게가 아니라 방공호 같은 지하실이었다.

듣는 귀는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여기까지는 만드는 쪽 이야기이고, 이야기의 절반일 뿐이다. 대중은 왜 이 낯선 소리를 받아들였을까.

1969년에 인간이 달을 밟았다. 우주는 날마다 뉴스에 나왔고, 미래는 당연히 오는 것이었다. 영화관 스크린에는 우주선이 떠다녔고, 거실 텔레비전은 로켓 발사를 생중계했다. 날마다 우주를 바라보던 사람들에게 별 사이를 떠다니는 듯한 20분짜리 곡은 이상할 것이 없었다. 오히려 기다리던 음악이었다.

소리를 실어 나른 것은 심야 라디오였다. 영국의 존 필은 아무도 틀지 않던 독일 음반을 밤 방송에 틀었고, 그 방송을 들은 젊은 음반 사업가들이 독일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갓 세워진 버진 레코드가 탠저린 드림과 계약했고, 1974년의 영국 차트 진입은 거기서 나왔다. 두 해 뒤 프랑스에서는 한 청년이 파리 아파트 부엌에 차린 임시 스튜디오에서 앨범을 녹음했다. 그 앨범 옥시젠은 곧 프랑스를 넘어 세계 곳곳의 거실로 퍼졌다.

교회도 한몫했다. 유럽에서 이 음악은 클럽 못지않게 성당에서 자주 연주됐다. 돌벽의 긴 잔향이 신디사이저와 잘 어울린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 공간에는 앉아서 눈을 감고 귀 기울이는 습관이 이미 자리 잡고 있었다. 랭스 대성당의 하룻밤이 그 정점이다. 3,000명을 예상한 자리에 6,000명이 넘게 몰려들었다. 이 음악을 기다린 사람이 그만큼 많았다.

이렇게 들어라: 배경을 귀로 확인하는 세 곡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모두 귀로 확인할 수 있다.

친구에게 한 곡만 보낸다면 Autobahn 이다. 이 사실도 함께 알려 주자. 이 음악의 요람인 서베를린은 병역이 면제되는 도시였고, 그래서 군대에 가는 대신 신디사이저 앞에 앉은 청년들이 모인 도시였다.

과거를 거절한 세대가 과거 없는 악기를 들고, 미래를 바라보던 청중 앞에서 연주했다. 이 삼박자가 한 시대에 맞아떨어진 일은 그 전에도 그 뒤에도 없었다. 그래서 이 음악은 다시 만들 수 없고, 지금도 그 10년의 녹음 속에서만 숨 쉰다. 밤에 불을 끄고 틀면 반세기 전 지하실의 공기가 스피커 사이에 고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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