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작업실. 작은 초록 화면이 달린 디지털 신디사이저와 케이블이 엉킨 랙 장비Photo: choworks-dev(프롬프트) · 자체 생성물
Editor's note · No. 23

1980년대, 이 음악은 어떻게 달라졌나

악기 값이 무너지고 기계끼리 말이 통하자 긴 곡이 짧아졌다. 소리가 영화관과 클럽으로 흩어진 10년.

짧게 말하면

1983년 1월, 애너하임의 악기 전시장에서 두 회사의 신디사이저가 케이블 한 가닥으로 연결됐다. 한쪽은 미국에서 만든 프로핏 600, 다른 쪽은 일본에서 만든 주피터 6 이었다. 한 건반을 누르자 다른 건반이 소리를 냈다. 구경하던 사람들에게는 시시한 재주로 보였을 것이다. 그 재주의 이름이 MIDI 다. 1970년대에 서베를린의 뒷방에서 자란 음악은 이 10년을 지나며 완전히 다른 물건이 된다.

값이 무너졌다

1970년대에 이 소리를 내려면 빚을 져야 했다. 무그 모듈러는 밴드 하나가 작정해야 살 수 있는 값이었고, 1979년 호주에서 나온 페어라이트 CMI 는 15,000파운드였다. 3년 뒤 나온 2세대는 30,000파운드였다. 소리를 녹음해 건반으로 되불러 내는 이 기계는 스튜디오를 가진 사람의 물건이었다.

1983년에 야마하가 DX7 을 1,995달러에 내놓으면서 그 벽이 무너졌다. 스탠퍼드에서 나온 FM 합성 방식을 쓴 첫 대중용 디지털 신디사이저였고, 20만 대 넘게 팔렸다. 드럼도 같은 길을 갔다. 1980년에 롤랜드 TR-808 이 1,195달러로 나왔고, 1982년에는 진짜 드럼 소리를 담은 린드럼이 나왔다. 1983년의 TR-909 는 롤랜드가 만든 첫 MIDI 드럼머신이었다.

값이 내려간다는 말은 다른 사람이 들어온다는 말이다. 방 한 칸과 월급으로 이 소리를 내는 사람이 생겼다.

기계가 서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MIDI 규격은 1983년 8월에 배포됐다. 이전까지는 회사마다 연결 방식이 달라서, 신디사이저 두 대를 같이 쓰려면 두 손을 써야 했다. 이제 건반 하나가 여러 대를 부렸고, 시퀀서가 사람 대신 그 일을 맡았다.

이것이 곡의 모양을 바꿨다. 1970년대의 긴 곡은 한 번에 연주해 그대로 남긴 것이다. 기계가 흔들리면 그 흔들림까지 음반에 들어갔고, Phaedra 의 유명한 음 이탈이 그렇게 남았다. MIDI 뒤의 음악은 짧은 토막을 쌓고 고쳐 붙인 것이다. 20분 동안 한 번 일어나던 사건이, 이제 3분 안에 여덟 번 일어나야 했다.

곡이 짧아지고 화면으로 갔다

탠저린 드림이 그 변화를 가장 먼저 보여 줬다. 1981년 3월에 미국에서 개봉한 마이클 만의 Thief 에 이 밴드의 음악이 깔렸다. 1983년의 Risky Business 가 뒤를 이었고, 리들리 스콧의 Legend 는 유럽에서 제리 골드스미스의 음악으로, 1986년 미국에서는 탠저린 드림의 음악으로 나왔다. 같은 영화가 대륙에 따라 다른 소리를 냈다.

영화음악은 길이를 정해 준다. 장면이 90초면 곡도 90초다. 1979년에 들어온 요하네스 슈묄링이 1985년 10월까지 함께한 시기의 음반들이 그래서 짧고 또렷하다. 이 시기를 두고 팬들 사이에 말이 많다. 그 말이 많다는 사실 자체가 무엇이 바뀌었는지 알려 준다.

반젤리스는 아예 극장을 통째로 가져갔다. 1982년 3월 29일, 제5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불의 전차의 음악이 상을 받았다. 그해 여름의 블레이드 러너는 이 음악이 미래를 그리는 기본 소리가 되는 자리였다. 다만 그 음반을 사려는 사람은 12년을 기다려야 했다. 정식 음반은 1994년 6월에야 나왔다.

무대가 커졌다

장 미셸 자르는 다른 쪽으로 갔다. 1981년 가을에 베이징에서 두 번, 상하이에서 세 번 연주했다. 자르의 공식 약력은 이를 문화대혁명 뒤 중국에서 공연한 첫 서방 대중음악가의 무대로 적는다. 1986년 4월 5일에는 휴스턴 도심을 무대로 삼았다. 시 설립 150주년과 나사 25주년을 함께 기린 자리였고, 관객 수는 자료마다 130만에서 150만 사이로 적힌다. 숫자가 흔들린다는 것은 아무도 셀 수 없었다는 뜻이다.

뒷방에서 시작한 음악이 도시 전체를 객석으로 쓰는 데 15년이 걸렸다.

거실로 간 소리

미국에서는 이 소리가 다른 이름을 얻었다. 기타로는 1980년대 중반에 게펜과 세계 배급 계약을 맺었고, 1986년에 Toward the West 를 냈다. 첫 미국 순회는 1987년 가을이었다. 같은 해 2월, 그래미에 뉴에이지 부문이 처음 생겼다.

이름이 생기면 판매대가 생기고, 판매대가 생기면 팔린다. 서점과 음반점에 뉴에이지 칸이 놓였고 이 음악은 거기 꽂혔다. 값을 치른 것도 있다. 서베를린의 방에서 나온 음악과 안마 시술소에서 트는 음악이 같은 칸에 들어갔다. 지금도 이 음악을 꺼내면 배경음악 아니냐는 말이 먼저 나오는데, 그 오해가 시작된 자리가 여기다.

춤추는 쪽으로 간 소리

같은 10년의 다른 쪽 끝에서는 이 소리가 춤으로 갔다. 1981년 12월 12일, 마누엘 괴칭이 한 번에 58분을 연주해 테이프에 담았다. 3년 뒤 클라우스 슐체의 레이블로 나온 그 판이 E2-E4 다. 1989년에 이탈리아에서 나온 수에뇨 라티노가 그 소리를 그대로 가져다 썼고, 클럽 음악은 이 판을 자기 조상 가운데 하나로 부른다.

디트로이트에서도 같은 일이 있었다. 후안 앳킨스는 1980년 무렵 크라프트베르크와 텔렉스, 디보, 조르조 모로더, 게리 뉴먼만 녹음한 테이프를 차에서 계속 틀었다고 말했다. 데릭 메이는 그 유럽 음악이 왜 좋았는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깔끔하고 단정했고, 자기들에게는 우주처럼 아름다웠다는 것이다. 디트로이트는 엉망이었고, 그래서 그 소리에 끌렸다고 했다.

영국에서는 같은 영향이 라디오 히트로 나왔다. OMD 의 앤디 매클러스키는 자기 인생이 바뀐 날짜와 자리를 정확히 기억한다. 1975년 9월 11일, 리버풀 엠파이어 극장 Q36 석에서 크라프트베르크를 봤다는 것이다.

이렇게 들어라: 10년을 귀로 확인하는 세 곡

친구에게 한 곡만 보낸다면 Zoolook 의 타이틀곡이다. 이 사실도 함께 알려 주자. 1983년에 서로 다른 회사의 신디사이저를 잇겠다고 만든 규격 MIDI 는 지금도 그때 그대로 쓰인다. 40년 넘게 고치지 않고 쓰는 약속이 이 바닥에 하나 있다.

이 10년의 끝에서 1970년대의 토양에 뿌려진 씨앗은 한 그루가 아니라 숲이 되어 있었다. 영화관에 하나, 경기장에 하나, 거실에 하나, 클럽에 하나씩이었다.

어디서 구하나

장 미셸 자르 Zoolook · AmazonCD 와 LP 로 지금 구할 수 있는 것들.장 미셸 자르 Zoolook · Discogs원반과 재발매 목록. 판마다 무엇이 다른지도 함께 있다.
반젤리스 Blade Runner · Amazon1994년 음반과 그 뒤의 확장판.반젤리스 Blade Runner · Discogs어느 판에 어떤 곡이 들었는지 비교할 수 있다.
마누엘 괴칭 E2-E4 · AmazonCD 와 LP 로 지금 구할 수 있는 것들.마누엘 괴칭 E2-E4 · Discogs재발매가 여러 번 있었다. 판마다 마스터가 다르다.